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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15 20:22 수정 : 2012.08.15 20:22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조현용 경희대 한국어교육전공 교수

구한말에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최익현 선생이 ‘오두가단 차발불가단’이란 말을 했다. ‘내 목은 칠 수 있을지언정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는 의미다. 머리카락이 뭐라고 죽어도 못 자르겠다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타이 등 동남아 국가 중에는 머리를 만지는 것이 금기인 곳이 많다. 머리를 만지면 영혼이 나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실제로 영혼이 나가기 때문이 아니라 머리가 가장 소중하고 위험한 부위여서 보호하려고 그러한 금기가 생겼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누군가의 머리를 만지는 것은 매우 기분 나빠할 행위다. 어린아이들을 칭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함부로 남의 머리를 만질 수는 없을 것이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머리를 만지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른 꾸지람에는 고분고분하게 듣던 아이들도 머리를 만지면 화를 낸다. 생각해 보면 교복 등으로 획일화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탈출구는 머리카락인 셈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언론의 표현대로 ‘입시지옥’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나마 머리 모양은 해방의 상징이 되는 셈이다.

어른들, 기성세대 중에는 아이들의 머리 모양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1980년대 초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당시는 과외 및 학원 금지, 교복자율화, 두발자율화가 급작스레 실시되었던 시절이었다. 덕분에 나는 일제강점기의 검은 교복도 입어 보았고, 사복도 입어 보았다. 또한 동자승 같은 까까머리에서 파마머리까지를 경험해 본 세대다. 약간의 혼란과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머리를 길렀던 친구들이 나쁜 사람으로 자라난 것도 아니었다. 그때의 머리 모습이 지금의 모습을 규정짓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교복을 답답해한다. 사실 나는 교복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학교마다 전통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복도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두발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좀더 자율을 주기 바란다. 두발이 자율화되면 학생들이 딴생각을 할 거라 걱정하지만 ‘0교시’에, ‘야간 자습’에, ‘입시’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일정한 머리를 강요하는 것은 반항심을 키울 뿐이다. 사실 아이들의 딴생각보다 걱정되는 것은 아이들의 분노와 반항심이다. 인터넷에 ‘오두가단’을 쳐 보라. 수많은 아이들의 분노와 반항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면 몇몇 중·고등학교들이 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의 혼란 속에서 두발을 강제하려고 하는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다. 제발 아이들의 입에서 ‘학교를 그만둘지언정 머리카락은 안 자르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학생들의 머리와 관련된 기본적인 인권은 보장해 주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영혼이 없는 채로 자라게 될지도 모른다. 기계처럼 공부하고, 기계처럼 사고하는 아이들이 될 수도 있다. 학생들의 머리를 강제로 자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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