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흡연율 낮추려면 담뱃값 인상해야 / 서홍관 |
보건복지부가 흡연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담뱃갑에 경고사진을 넣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담뱃갑에는 담배가 해롭다는 문구와 함께 발암물질 6종이 표기돼 있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흡연자들의 90%는 현재의 경고문구가 전혀 금연을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복지부의 이번 결정은 뒤늦긴 했지만 백번 옳은 결정이다.
그러나 경고그림 삽입 정도로는, 1000만명 이상의 흡연자가 남아 있고, 해마다 5만5000명이 담배 때문에 죽어나가는 심각한 현실을 타개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1980년대에는 성인남성 흡연율이 무려 80%에 육박했으나 이후 금연운동과 금연정책에 의해 2007년에는 45%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2007년을 기점으로 남녀 흡연율이 모두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2005년 500원을 인상한 뒤 8년 가까이 담뱃값이 전혀 오르지 않은 데서 찾을 수 있다. 물가는 매년 오르는데 담뱃값이 오르지 않다 보니 담배의 ‘실질가격’이 떨어지고 이것이 흡연율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담뱃값은 선진국과 비교해 절대적으로 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8년 기준으로 117개 나라를 대상으로 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담배의 갑당 가격을 조사해보니, 한국은 1달러98센트로 세계 76위를 기록했다. 전체 평균(2달러32센트)에도 못 미쳤다. 담배가격 인상의 효과에 대해서 회의적인 사람들은 담배가격을 높이더라도 필 사람은 핀다는 논리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실과는 다르다. 담배가격이 오르면 흡연율이 떨어지고, 가격이 떨어지면 흡연율이 오르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의 공통된 현상이다.
세계은행의 연구에 의하면 담뱃값이 10% 오르면 국가별로 담배 소비가 4~8%가량 줄어든다고 한다. 유럽 52개 나라를 대상으로 한 또다른 연구에 의하면 담배가격이 10% 인상되면 담배 소비가 2~7% 감소했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세계 각국이 담뱃값을 일제히 10%씩 올리면 전세계 흡연인구가 4000만명 줄어든다고 한다.
담배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주 주장하는 것이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높여 서민을 괴롭히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단편적인 시각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금연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중산층 이상에서는 흡연율이 급격히 감소하는데 저소득층의 흡연율은 상대적으로 적게 떨어지고 있다. 저소득층은 건강 수준이 고소득층에 비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흡연율의 격차가 건강격차를 더 벌리고, 건강격차는 다시 소득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서민들을 위해 담뱃값을 인상하지 말라’는 주장은 결국 ‘저소득층을 계속 흡연하게 만들어 그들의 건강을 포기하자’는 말과 다름없다.
그러나 담배가격을 올렸을 때 저소득층이 담배를 끊으면 되는 일인데, 담배를 못 끊는 저소득층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무료로 약물을 지원하는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 새로운 사업을 위한 재원은 담배가격을 올렸을 때 새로 얻어지는 세수로 충분하다.
세계보건기구가 주창한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서는 담배가격을 인상해 흡연율을 낮추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8년간 담배가격을 인상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올해 11월에는 협약 당사국 총회가 서울에서 열려, 무려 175개 나라가 참가한다. 담배규제기본협약이 요구하는 의무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주최국으로서 낯이 서지 않을 것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땀으로써 우리 국민의 자존심은 한껏 높아졌다. 그러나 건강과 보건에 있어서도 남보다 앞서가진 못하더라도 주최국으로서 최소한의 체면은 차려야 하지 않을까?
서홍관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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