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산업재해에 대한 후견지명 효과 / 고재철 |
지난 6월16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의 한 건축현장에서 자재를 정리하던 노동자 2명이 사망했다. 이들이 딛고 있던 바닥판이 붕괴해 35m 아래로 떨어진 것이었다. 국내 산업현장에서는 해마다 2000여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9만여명의 재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재래형 재해인 떨어짐, 넘어짐, 물체에 맞음 등 단순사고가 매년 비슷한 비율로 재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은 사고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후견지명’ 효과(사후관점 편향)이다. 이는 심리학자 바루크 피시호프에 의해 처음 증명됐다. 그는 냉전시기인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중국과 소련 방문을 소재로 한 연구에서 일반인들에게 닉슨 대통령이 마오쩌둥을 만나는 일이 성사되기 전에 발생가능한 여러 상황의 발생확률에 대해 물었고, 이들의 만남이 성사된 후 2주에서 6개월에 거쳐 이전에 응답했던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에 대해 이전에 자신이 답한 것을 기억해서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과거 두 대통령의 만남이 실패할 것으로 예측했던 사람들조차 자신들은 성공할 것으로 응답했다고 하는 등 실제로 일어난 일의 경우,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과거에) 응답했다는 비율이 1차 응답보다 높게 나타난 반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사후 응답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를 안 뒤에, 처음부터 사건이 그렇게 전개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져 3~6개월 뒤에는 84%의 응답자가 사후관점 편향, 즉 사건 전에는 ‘그렇게 안 될 거야’라고 답한 사람이 사건 후에는 ‘나는 그 전에 그 일이 그렇게 될 줄 알았어’라는 식의 편향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연구한 리처드 니스벳은, 사후확인 편향은 동양인(당시 실험 대상은 한국인)에게서 좀더 심하게 발생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후견지명 효과로 인해 건설현장의 사고 원인이 단순명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전을 주 업무로 하는 사람 외에는 사고 전에 그 사고가 일어날 것을 예측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전에 관한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시스템 안전이란 ‘안전보건경영시스템’과 같이 안전경영프로그램이 지향하는 접근으로, 현장의 안전을 담당자 개인의 능력이나 일과성 점검 등의 조처에 의존하지 않고, 설계단계부터 전체 생산과정과 제품의 물류까지 모든 과정에 잠재해 있는 위험의 발굴, 대책의 수립·시행·환류까지 전체 구성원이 참여하여-마치 평일 아침 근로자들이 일터에 출근하듯이-아무도 지시하지 않고 누구도 고민하지 않아도 모든 실행이 안전하게 되어가는 안전관리를 의미한다.
사고성 사망만인율이 우리의 10분의 1 이하인 영국에서는 1992년에 법제화된 위험성 평가를 기반으로 이 시스템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고, 다행히 우리나라도 3년 전부터 2013년도 제도화를 목표로 연구와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제도가 우리 사회에 활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대와 참여가 관건이다. 노사정의 원숙한 논의와 참여를 바탕으로 우리 현실에 적합한 제도가 마련되어 대한민국 산업현장의 안전이 세계 일류 수준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고재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문화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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