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부실 저축은행과 경제대통령 / 홍창의 |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들의 비리가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지금의 대통령을 당선시킨 최고의 주역들이 부실저축은행의 검은돈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부산저축은행 사건 때부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다. 어떻게 일개 저축은행이 그렇게 엄청난 부정대출과 공금횡령은 물론이고 회계조작까지 서슴지 않고 금융감독기관의 공무원까지 합작해서 서민의 돈을 갈취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제 그 해답이 풀렸다. 경제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안팎에서 부추긴 사람들이 저축은행 비리의 숨은 손이었던 것이다.
비비케이(BBK) 주가 조작으로 서민들이 수백억원의 피해를 보고, 자살한 사람들도 많이 발생하면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을 때에도, 그 회사의 실소유주 문제가 불거질 때에도, 주어가 없다는 기상천외한 변론을 들을 때에도, 대다수 국민 마음속에는 우리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기만 하면 괜찮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부실 저축은행의 판도라 상자를 열면 열수록 청와대의 손때가 묻어나오고 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자신했는데, 이번에는 주어가 없다는 말 대신에 또 어떤 품사가 빠졌다고 세 치 혀를 놀릴 것인가? 도대체 우리나라 언어 또한 이토록 오염된 적이 있었던가?
최근 몇 년 동안 저축은행 비리는 극에 달하고 있다. 영업정지를 당하기 직전에 미리 돈을 빼내 가질 않나, 철석같이 믿었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도 금융감독기관과 은행의 협잡행위로 조작되었다. 불과 몇 달 전 작성된 거짓 보고서에는 부실 액수가 크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사건 발생 후 이보다 무려 60배가 넘는 부실을 감추고 있었음이 폭로되기도 했다.
저축은행 비리의 실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불법대출, 숨겨진 거액의 신용대출, 대출담보의 무단 해지, 차명대출, 이중장부 등등은 가히 피라미드 사기금융 수준이다. 이제 우리의 은행은 믿을 만한 기관이 아니다.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역시 옛날의 서슬 퍼런 감독기관이 아니고 은행으로 내보낼 낙하산 인사의 인큐베이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근에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해킹들도 유사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농협 해킹 사태 등은 북한 소행으로 결론내렸지만, 이도 완벽하게 납득하기 어렵다. 정말로 북한에 의해 해킹이 되었든 내부의 악의적 목적 행위가 되었든 간에 예금 원장이나 대출 원장이 모두 날아가는 사건이 발생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눈앞이 캄캄하다. 중요한 건 서민의 돈이 날아갈 때, 이득을 보는 자가 누구냐다.
그동안 부실 저축은행의 피해자가 서민이라고 부각시킨 것이 언론의 초점이었다면, 이제는 부실 저축은행의 진짜 수혜자가 누구냐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구속된 은행장, 정치실세들이 모든 돈을 개인적으로만 착복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의리 없는 정치실세들이 그 돈이 대선자금으로 들어갔다고 까발린다면, 서민들의 돈을 갈취해서 대통령 만든 것밖에 되질 않는다. 경제대통령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만에 하나 서민은행을 멍들게 하면서 대선을 치른 게 사실이라면, 이전 정권들이 대기업 갈취해서 대통령 만든 것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고 본다.
부자와 힘 있는 사람들은 미리 돈을 찾아가거나 알아서 은행 직원들이 옮겨주고, ‘빽’ 없는 서민들은 이래저래 돈만 뜯기니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더 안타까운 것은 향후 다른 은행들의 영업정지도 가능한 얘기고 비리 역시 반복될 거라는 생각이다. 도덕이 연기처럼 하나둘씩 사라지는 나라에서 양심 포기 대열에 경제의 기둥인 은행마저 합류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앞으로의 정권도 마찬가지다. 경선부정으로 맺어진 실세들의 비뚤어진 동지애와 공천장사로 거두어들인 자금과 인맥을 통해야만 대통령이 된다면, 이번 정권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경제민주화’라는 맥 빠진 구호를 외친다 해도 양심이 실종된 대한민국에 경제란 단어는 서민과 점점 멀어질 뿐이다.
홍창의 관동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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