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걷는 길’ 안전성, CCTV가 처방 아니다 / 윤정준 |
홀로 제주 올레길로 걷기 여행에 나섰던 여성이 실종 12일 만에 납치 살해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올레길이나 둘레길 같은 도보 탐방로의 안전성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살해 사건이 우발적인 범행이었다 하더라도 여성 도보 여행자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책 마련은 시급하다. 새로운 걷기 여행 문화를 만들고, 많은 국민들에게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치유의 역할까지 담당해온 ‘걷는 길’이 자칫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 경찰력 동원 등 많은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런 방법이 과연 효율적이며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미국 등과 같이 오래전부터 트레킹 문화가 발달한 곳에서는 이미 도보 탐방로에서의 이용자 안전과 관련한 논의가 있어 왔다.
미국의 경우, 존 뮤어 트레일이나 애팔래치안 트레일 같은 곳은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며, 인적이 매우 드문 자연 지역에서의 이동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일상생활 공간에 비해 범죄 발생 건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용자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수칙과 사고 발생 시 긴급 구조 방안 외에는 특단의 안전 대책을 세우고 있지는 않다.
사실 이번 제주 올레 사건이 나기 전까지는 올레길뿐만 아니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탐방로에서 절도나 강도, 또는 성범죄와 관련한 이슈가 거의 없었다. 이는 자연 지역에서 도보 여행을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윤리적 의식 수준이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또한 좀더 자연 상태에 가깝고 비포장 노면을 선호하는 도보 이용자들의 특성상, 탐방로 노선 선정시 자연 자원이 매력적인 공간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걷기 여행자들은 다소 불편하지만 좀더 호젓한 전원지역으로의 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걷기 여행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탐방로 곳곳에 시시티브이를 설치하거나, 주요 지점에 경찰력을 배치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걷는 길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별 탐방로마다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 안전수칙을 마련하고 이를 미리 고지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인적이 드문 자연 지역의 경우 비상탈출로를 확보하고, 이용자가 코스로 진입하기 전에 이를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탐방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각종 시설물에는 반드시 그 장소의 위치명이나 관리번호, 비상연락처를 명기해 여행자가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밖에 탐방로의 운영관리 주체는 경찰이나 행정기관과 함께 취약지역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해 위험 요인을 미연에 제거해 나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대책이 있었다고 이번 납치 살해 사건과 같은 일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은 없다. 다만 그동안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너무 하드웨어 중심의 탐방로 조성 사업에만 매달려 있지 않았나 하는 점에 대해서는 반성이 필요하다. 이제부터라도 탐방로별 특징을 고려해 이용자의 안전 대책을 포함하여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탐방로 관리운영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이번 사건과 같은 끔찍한 일을 미연에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이 될 것이다.
윤정준 (사)한국의길과문화 이사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