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11 19:31
수정 : 2012.07.1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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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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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시전형 유형이 자그마치 3000가지가 넘는단다. 그 명칭만 봐도 세상의 고급 수식어는 다 모였다. 다양한 유형으로 다양한 신입생을 받았으니 개별 맞춤식 선진 교육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 어찌 되었든 입시전형이 다양화됨에 따라 수험생은 한마디로 죽을 맛이다. 사교육 시장도 갖가지 형태로 더욱 확장되고, 거기에 유사 사교육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사교육을 줄이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수시전형에다 큼직한 하나를 더했다. 입학사정관 전형이 그것이다. 학업성적 외에 소질·경험, 성장환경, 잠재력을 종합평가한다는 취지는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학부모와 교사의 선택적 도움을 받지 못할 학생이라면 처음부터 포기하는 게 맞다. 입학사정관제의 현실을 수험생 입장에서 들여다보자.
입학사정관 전형은 대학마다 평가기준이 다르다. 그러니 일단 내신을 최대한 관리하면서 학교 임원, 봉사활동, 방과후 특별활동, 교내외 수상 실적 등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 영어인증은 기본이고, 자기주도학습을 했다는 근거도 필수다. 이 모든 과정을 잘 포장해서 ‘에듀팟’에 담아야 한다. 그래도 어찌 될지 모르니 논술과 수능 준비도 해야 한다. 야간자율학습까지 충실히 참석하는 순진한 모범생 혼자만의 힘으로는 관리가 불가능한 프로그램이다. 학생에게 유리한 자료는 빠짐없이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도록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강요할 날이 멀지 않았다. 발 빠른 학부모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생활기록부 분량이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슈퍼맨이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게다가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스펙도 준비해야 한다. 소위 ‘창의’라는 수식어가 들어 있는 각종 대회에 참가하려니 돈도 많이 든다.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과 개입이 없다면 관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허도 내고 동아리도 운영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좋은 품성을 지니고 있다는 근거도 챙겨야 한다. 남의 작품을 내 것으로 만드는 솜씨는 애교로 봐달라는 세상이다.
준비할 것이 이리도 많다. ‘패자부활전’이 없으니 장기간 다양하게 준비해 둬야만 대학별 맞춤형 자기소개서를 그럴듯하게 작성할 수 있다. 대학 진로를 중도에 바꾸지 않는 게 유리하단다. 꿈 많은 성장기 학생에겐 무리한 요구다. “입학사정관 전형,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하자.” 인터넷에 떠다니는 문구다. 또다른 사교육 시장이, 교묘한 편법이 진화할 조짐이 보인. 이게 현실이다. 이래서는 참다운 인성 교육도, 창의적 인재 육성도, 개천에서 용 나기도 모두 어렵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모든 상황이 입학사정관제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강변할 것이다. 수험생의 입장을 외면하면 그럴 수도 있다. 미국에서 성공한 선진 입시제도라고 할 것이다. 미국에서 수십년 자생하며 성숙한 ‘아륀지’는 한국 땅에서 잘해야 ‘오렌지’, 잘못되면 ‘탱자나무’로 퇴화한다. 풍토와 기후가 다르기 때문이다. 교과부에 끌려다니는 대학들 책임도 크다. 입시는 그들의 평가 연습장이 아니다. 수험생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고동섭 대전시 서구 둔산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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