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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11 10:35 수정 : 2012.07.11 16:14

김광섭 박사

화공학회 초청 천안함 관련 논문 발표 취소는 전례 없는 일

나는 지난 4월말 한국화학공학회의 연례 봄 학술대회에서 천안함 사건에 관해 강연할 예정이었다. 그건 화공학회의 초청이었고 학술적인 논문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논문은 천안함이 1번 어뢰에 의해 침몰했는지 여부를 규명할 가장 중요한 증거인 흡착물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버블온도의 계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강연은 취소됐고 논문은 발표되지 못했다. 그리고 6월 23일치 <한겨레>는 내 논문의 내용과 논문 발표가 취소된 경위를 전했다. 그러자 학회는 6월 25일 해명서를 통해 화공학회가 외압에 의해 내 발표를 취소했다는 취지의 이 보도를 반박했다. 필자의 논문 발표를 취소한 것은 학회의 정상적인 활동이며, 취소의 이유는 발표 내용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궁색한 변명이다. 공익 법인인 학회가 정치 단체처럼 정치적인 기준을 내세우며 그걸 정상적인 활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한겨레>는 필자의 학술적인 연구에 대해서 논문의 내용을 깊이 있게 전하지는 못했으나 공정하게 전달하려고 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 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 같다. 그런데 학회는 이 기사를 정치적인 기사라고 표현했다. 그건 필자는 물론이고 <한겨레>를 모독하는 일이다. 누가 더 정치적인 것인가?

학회는 필자가 제출한 논문의 내용이 국가적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고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필자를 초청한 것이다. 이러한 논문을 “발표 내용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모호한 정치적인 기준을 추가해 재심사한 뒤 발표를 취소하도록 했다. 이를 학회의 정상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는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 기준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공익 법인인 학회가 명시한 학회의 임무와 상치된다. 학회는 ‘국가적 문제의 해결’을 학회의 임무라고 명시했다. 학회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의 여부에 개의치 말고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래 노력한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학회 이창하 총무 이사는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학회의 기본적인 임무를 무시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둘째, 이 기준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세째, 이 기준은 학회의 임원들이나 자문위원회 위원들이 개인적인 정치적 의견(편견) 또는 이해관계에 의하여 남용될 수 있다.

솔직히 학회는 논문의 내용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우려했다기 보다는 다른 걸 더 우려했을 것이다. 필자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논쟁이 재연됐을 경우에 학회나 학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받을 수도 있는 피해를 우려했을지 모른다. 학회나 학회의 많은 지도층 인사들의 활동은 정부의 지원을 받기 때문이다.

공익 단체이자 과학자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학회가 정치적인 기준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기준은 학회가 필자의 논문 발표를 취소하려고 특별히 창안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창하 총무이사가 필자에게 보내왔던 이메일들을 보면 학회가 필자의 발표를 취소하기 위한 구실을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학회의 임원들이 원로 자문위원회를 연 것은 발표 취소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이었다. 그 결과 학회의 지도부가 집단적으로 정치적 결정에 가담하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학회의 기준은 발표된 논문이 정치적으로 이용될지의 여부가 되서는 안된다. 그것이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는가, 학술적 가치가 있는가의 여부가 돼야 한다. 필자가 하려 했던 발표의 내용은 천안함조사에 이미 관여했던 합조단과 반합조단의 과학자들과 새로이 진실을 밝히려고 연구를 시작하는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학회와 학회지가 이러한 정치적인 기준을 사용하는가? 한국기계공학회는 2010년 연례 학회에서 천안함 사고에 대한 몇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구온난화에 관한 학술연구는 흔히 정치적으로 이용되지만 이러한 이유로 논문 발표가 안됐다는 보도를 필자는 보지 못했다. 이번 경우처럼 학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해 그런 결정을 내린 예는 없다고 본다.

이승종 학회 회장은 논문 발표의 취소는 한국적인 특수한 사정 때문이라면서 대회에 참석했던 필자에게 사과했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형식적이고 무책임한 사과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국정조사와 같은 방법으로 학회의 잘못된 결정을 조사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계의 풍토가 개선돼야 할 것이다.

한국화학공학회는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를 바란다. 학회의 이승종 회장은 이런 유례가 없는 ’비행’이 일어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필자는 화공학계의 한사람으로 이런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건 오로지 학회가 고유한 임무인 국가적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걸 밝히고 싶다.

재미 과학자(화학공학)·전 미 과학재단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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