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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09 19:19 수정 : 2012.07.09 19:19

한정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해양캠페이너

한국 정부는 지난 7월4일 파나마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에서, 한국 연안에서 과학포경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가 상업 포경 금지와 함께 모든 고래 종의 포획을 금지한 지 26년 만이다. 정부는 과학적 연구를 위해 포경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밍크고래의 개체수가 증가하면서 어획량이 감소해 어업 종사자들의 생계가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를 위해 포경이 필요하다는 말은 견강부회일 뿐이다. 과학 포경이라는 개념은 국제포경위원회가 처음 생긴 1946년 무렵 과학적 연구를 하려면 고래를 죽여야 한다고 믿었던 시기에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 과학은 고래를 죽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고래 연구를 할 수 있을 만큼 발달했다. 전세계적으로 고래의 생물학 및 생태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수천명에 이르지만 고래를 죽이면서 연구하는 이는 없다. 실제로 이번 회의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단은 자국의 과학자들이 한국에 고래를 죽이지 않고도 과학적 조사를 하는 방법 및 기술을 공유하도록 하겠다고 제시했지만 한국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고래를 죽이면서 연구를 하는 곳은 일본과 같이 상업 포경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뿐이다. 과학의 탈을 쓴 일본의 상업 포경은 지난 20여년간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 왔다. 또한 국민의 혈세로 추진되어 온 일본의 포경산업은 정작 고래 고기를 찾지 않는 국민들로 인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은 왜 이 전철을 밟으려는 걸까.

고래가 어획량 감소의 원인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터무니없기까지 하다. 해양생태계의 일부인 고래는 수산자원 고갈의 원인이 아니다. 오늘날 연안을 비롯해 태평양과 같은 먼바다에서 수산자원이 고갈되고 그로 인해 어민들의 어획량이 줄어드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 많은 물고기를 잡아 왔기 때문이다.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우리는 더 많은 그물을 더 오랫동안 더 넓은 해역에 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어업 강도가 높아지고 한번에 많은 양을, 새끼물고기(치어)까지 싹쓸이하는 파괴적인 어업이 이루어지면서 바다는 점점 더 황폐해지고 있다. 동해안 어민들의 어획량이 줄어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문제의 원인을 이미 위기에 처한 고래에게 돌려 그들을 죽이겠다는 주장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살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세대인 어린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과 같다. 풍부한 생명다양성을 말살하려는 태도는 절대 어획량 감소의 해답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 연안의 밍크고래는 국제포경위원회에 의해 보호되는 개체군이다. 그러나 이미 한 해 100마리에 가까운 수가 우연히 그물에 걸려 죽는 ‘혼획’으로 희생되고 있다. 불법 포경으로 희생되는 밍크고래 중 경찰에 적발되는 수는 한 해 10~20마리 정도에 불과하지만 실제는 수백마리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된다. 해마다 많은 수가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여기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법적 포경까지 재개한다면 과연 고래의 앞날에 희망은 있을까.

한국 정부는 과학 포경 계획을 철회하여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대신 불법 포경을 막기 위한 노력, 혼획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고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수산자원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와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야말로 수많은 어민과 소비자들을 위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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