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6.25 19:29 수정 : 2012.06.25 19:29

장세진 전북 군산여상 교사

한때 무용론까지 제기됐던 교육과학기술부가 또 일을 저질렀다. 아직은 발표만 한 상태이니 정확히 말하면 일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 최근 교과부는 적정 규모의 학급 수 등을 규정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이하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학교 최소규모를 초·중학교 6학급, 고교 9학급으로 하고, 학급당 학생 수는 20명 이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기준에 미달하는 학교는 주변 지역과 공동통학구간으로 묶인다. 이럴 경우 농산어촌 학교 절반 이상이 폐교될 전망이다. 실제로 문 닫을 학교는 전남 57.5%, 강원 55.4%, 전북 46.5%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과부는 통폐합 잘하기에 따라 학교당 최고 1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현행 초·중등교육법의 통폐합 대상은 학생 60명 이하의 농산어촌, 200명 이하의 도시지역 학교이다.

이번이 2005년 불어닥쳤던 소규모 학교 통폐합과 다른 점은 교육감들이 대거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며 개정령안 철회를 주문했다. 민병희 강원교육감 역시 “농산어촌과 옛 도심지의 교육은 파탄나게 된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농산어촌의 씨를 말리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소지가 다분한 교과부의 ‘대책’으로 인한 황폐화가 앞에서 보듯 비단 전북만의 경우는 아니다. 전국에 걸쳐 농산어촌의 공동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지역균형발전은커녕 ‘노인촌’이나 ‘폐허의 유령마을’로 전락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참에…’ 하고 울며 겨자 먹는 심정이 되어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땅을 떠나게 될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 추진해온 ‘돌아오는 농촌’은커녕, 이를테면 교과부가 이농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해결방안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교육청 지원금이나 통폐합 학교 학생지원 등에 투입될 돈으로 교사 수를 늘리면 된다. 교사 수를 늘리면 현재 턱없이 못 미치는 법정 정원율 상향 효과와 함께 복식수업(한 학급에 두학년 이상의 학생들이 수업받는 것)과 상치교사(전공이 아닌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장기적으로 대도시의 많은 학급 정원을 15~20명 정도로 줄여 선진국형 교실이 되게 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마당이다. 농산어촌의 적은 학생 수는 얼마나 좋은 기회며 계기인가. 정녕 교사 1인당 학생 수 감축이야말로 질 높은 수업의 열쇠라는 걸 모른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교과부의 ‘대책’은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가 경제논리에 휘둘려 침해된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일제 침략기도 아니고 통폐합으로 인해 산을 하나 넘어 통학해야 하는 초등학생이 생긴다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을 지향하는 제대로 된 국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교과부는 얼마 전 수정한 개정령안을 내놨다. “교육감이 학교별 학급 수, 학급당 학생 수를 정할 때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과 교원의 적정한 수업시수 등을 반영하도록 한다”가 그것이다. 교과부가 한발 물러난 형국이다. 농산어촌을 폐허로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개정령안은 아예 백지화해야 맞다. 무엇보다도 농산어촌에서 학교는 그냥 학교가 아니다. 지역민들의 화합과 소통, 그리고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