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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9 18:03 수정 : 2005.07.29 18:04

채인선/동화작가 

주로 외국 그림책을 보며 크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자신을 한국인이 아닌 유러피언이라고 착각하며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50개 주 중 하나가 되거나 중국 또는 일본에 편입될 수도 있다. 지형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 해도 큰 나라의 문화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 한국에 살면서도 정서적인 난민이 되는 경우가 바로 이 경우이다.

인류 역사상, “책을 읽혀야 한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책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아느냐?”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도록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는 등의 말은 책과 아이가 발견된 이후 늘 있어온 진부한 잔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근래 우리나라 어린이책 출판상황을 보면 여기에 또 하나의 간곡한 잔소리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한국 아이들을 한국 책으로 키우자’는 말이다. 대형 서점에 가 보라. 각 유명 아동물 출판사의 도서목록을 보라. 한국 아이들이 만나는 책의 80%는 외국 번역책들이고 그중 그림책을 놓고 본다면 90%가 외국 번역책이다.

 그림책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림책이 아이들이 태어나서 맨 처음 보는 책이란 점이다. 또한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어울려 있는 책이라 한 나라의 정서적, 문화적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책은 한번 보고 마는 매체가 아니라 도서관에서 두고두고 보는 것이라 그 효과가 지속적이고 확산적이다. 책만큼 지금 이 땅의 정서와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매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통한 문화와 사고방식의 유입은 맥도널드나 한 편의 영화보다 더 위협적이라 할 수 있다.

90%를 외국 그림책을 보며 크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외국 그림책 1세대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끔찍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이 혼란은 문화를 비롯해 모든 생활의 영역에서 발견될 것이다. 1세대가 이 혼란 속에서 자기를 지켜낼 수 있을까? 만약 지켜내지 못한다면 2세대는 아마도 자신을 한국인이 아닌 유러피언이라고 착각하며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50개 주 중 하나가 되거나 중국 또는 일본에 편입될 수도 있다. 지형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 해도 큰 나라의 문화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 한국에 살면서도 정서적인 난민이 되는 경우가 바로 이 경우이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들자’는 전국민적인 캠페인이 얼마 전 우리를 지나쳐갔다. 이제는 ‘한국 아이들을 한국 책으로 키우자’는 캠페인이 필요한 때다. 외국 번역책을 내다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우선 아이들에게 한국 책과 외국 책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자. 진열을 따로 한다든지, 책의 저자를 확인하고 읽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독서 토론을 할 때는 “무엇이 이 책을 한국 책으로 만드는지” “책 어느 곳에서 한국 책이란 것을 확인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아이들에게 한국 책의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는 책을 수입할 때 그 내용이 한국 아이들의 정서와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점에서는 성인물과 마찬가지로 아동물 코너에서도 한국 작가 책과 외국 번역 책을 분리해 진열해야 한다. 이는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서도 고려할 만하다. 지금처럼 외국 책과 한국 책이 한데 놓여 서로 뒤섞인 상태에서는 한국 책을 찾고 싶어도 직원에게 물어보기 전에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림책 코너에서는 그해 출판된 한국 그림책을 상설 진열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이래야 외국 번역책에 수적으로 밀리는 한국 책을 보호하고 아이들 눈길을 한국 책에 오래도록 머물게 할 수 있다. 어린이도서관에서는 ‘한국관’을 따로 설치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작가들이 쓴 책, 한국에 관한 책들만 따로 모아 별도의 장소에서 진열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한국의 생태, 문화, 역사, 과학, 문학 등을 이 한국관에서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서구문화는 우리의 사고와 정서를 칭칭 감고 있는 담쟁이덩굴과 같다. 지금 이것을 걷어내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외국 문화를 제대로 볼 수도 없다. 지금이라도 우리 어른 세대들은 ‘큰 나라’에 대한 의존감을 벗어던지고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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