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6.06 19:35 수정 : 2012.06.06 19:35

2001년 1월17일, 세계 1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북부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첨단 아이티(IT)산업을 주도하던 실리콘 밸리의 컴퓨터가 멈추고 공장과 학교도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양초와 식료품, 연료 사재기에 나섰다. 혼란이 극에 달하자 다급해진 주지사는 급기야 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9월15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한국에서 전국적인 순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공장의 기계가 생산을 중단했다. 신호등이 꺼지면서 수많은 차량들이 엉켰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혼란에 빠졌다. 10년의 시차를 두고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미국과 한국에서 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후진적인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캘리포니아 정전사태의 배경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규제 완화가 그 직접적 원인이었다. 전력시장을 개설해 상품처럼 사고팔면 전기요금이 20% 이상 싸질 것이라며 시작한 규제 완화 정책으로 1998년 전력산업이 개편되면서 사태가 급변했다. 전력시장 도매가격이 심지어 100배 이상 급격하게 상승했다. 민영 발전사들이 교묘하게 전략적인 가동 중단을 통해 생산량을 감축시켰고, 엔론과 같은 부도덕한 기업들이 전력거래와 상관없는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전력수급 체계를 혼란에 빠뜨린 것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도매가격이 급등했지만 전력판매회사들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전기요금은 당국에 의해 규제받으면서 전력판매회사들이 경영난에 빠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캘리포니아 최대의 판매회사인 퍼시픽가스전기가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했다. 결국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는 전력공급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100억달러 이상의 채권을 발행하는 등 주 재정으로 이 사태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2011년 대규모 정전을 경험한 한국의 상황은 캘리포니아와 너무나 흡사하다. 2001년 민영화를 위해 구조개편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전의 발전회사들을 쪼개어 경쟁체제를 만들었다. 전력거래를 한다며 전력거래소를 만들어 전력계통의 관리 및 거래를 책임지게 했다. 한전은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회사로부터 전기를 구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그야말로 허울뿐인 전기판매회사로 전락했다.

2008년부터 국제유가의 급등으로 발전 연료가가 급상승하면서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갔다. 발전회사들은 급등한 발전연료비 전부를 한전으로부터 받는 구조이지만, 한전은 소비자요금의 엄격한 규제로 고스란히 그 부담을 떠안게 됐다. 석탄가격이 두배가 넘게 오르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4년 연속 8조원이 넘는 적자가 쌓였다. 유가가 오르면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싼 전기로 냉난방을 하고, 심지어 비닐하우스 재배도 농사용 전기로 모두 바꿨다. 더욱이 재벌 기업들이 애초 짓기로 했던 민자 발전소 건설을 포기하거나 지연시키면서 공급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9·15 순환정전은 바로 이런 전력산업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정전이 규제 완화와 민영화에 원인이 있었던 것처럼 한국 또한 규제 완화(분할 경쟁체제)와 정책 실패(전기요금정책 실패)가 화를 키웠다. 10년의 시차, 미국과 한국의 차이는 있지만 전력산업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 경쟁체제라는 똑같은 이유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해법은 완전히 달랐다. 캘리포니아는 막대한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즉각 민영화 중단과 재규제를 시행했지만, 한국은 책임질 사람 몇 명 옷 벗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노동조합의 전력산업 통합과 전기요금의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묵살됐다.

20℃ 중반에 불과한 기온이지만 예비율이 한자릿수를 오르내리면서 지금 한전은 초비상이다. 연일 전력 수급비상이 발령되고 전 직원들이 나서서 대규모 전기사용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전기사용 자제를 요청하고, 설비현장에 출동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2001년 캘리포니아 사태는 2012년 한국에서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주영 전국전력노조 위원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