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04 19:25
수정 : 2012.06.04 19:25
기업화·시장화된 대학에서
대학생들은 타자의 삶에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
김도민 서울대 대학원생
요즘 학교 가기에 앞서 학생증을 잘 챙겼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왜냐하면 올해부터 서울대학교 식당은 외부인에게 밥값을 1000원 더 받기 때문이다. 서울대 식당은 싼값에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다 보니 많이 먹을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다. 이에 생활협동조합(생협)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일차적으로 외부인의 밥값만 올리는 밥값차등정책을 시행했다. 나아가 이 조처는 외부인들 때문에 발생하는 재학생의 식사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한 학생복지 구현임을 표방했다.
대학본부와 생협 입장에서는 학내 구성원의 반발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적자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먼저 도입할 수 있는 정책이 외부인 식대 인상이었을 수 있다. 서울대 재학생들은 밥값차등정책이 도입되기 전부터 외부인의 학내 식당 이용에 매우 큰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지난해에 관악산 등산객과 택시기사들의 집단적 식당 이용으로 자신들의 식사권이 침해받는다는 토로가 학내 누리집에 올라와 재학생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나는 기사들의 학내 식당 이용까지 불편해하는 재학생들의 감정에 외려 불편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택시기사들이 학내 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그들의 팍팍한 삶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타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일차적으로 타자의 삶에 친숙해야 한다. 경제성장기인 1970~80년대 많은 서울대생의 부모님은 중산층 이하이기 십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이후 서울대 신입생은 급속히 부유층의 차지가 되었다. 즉 택시기사처럼 힘겨운 노동자가 자신의 부모님이거나 친척일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따라서 생계를 위해 밥값의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택시기사들의 애환은 서울대생의 시야에 들어오기 힘들 수 있다. 어쩌면 부유해진 서울대생 개인의 문제만도 아닐 수 있다. 대학의 기업화·시장화라는 저 거대한 시대적 변화가 대학생들의 ‘공감력’을 뺏어버렸을 수 있다. 서울대라는 학벌이 더 이상 좋은 직장을 백퍼센트 보장하지 못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이제 서울대생들은 과거 선배들처럼 핍박받는 노동자를 위해 공장에 잠입하거나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시위에 나갈 ‘여유’가 없다.
대학의 공공성은 어느새 불필요한 사치품이 돼버렸다. 대학은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라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직업양성소가 된 지 오래다. 기업 로고가 박힌 건물들이 대학을 점령했으며 그곳의 학생들은 기업이라는 주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의 스펙 단장에 여념 없다. 어느새 대학 풍경은 대기업이 선사한 건물과 경영·경제학 서적을 움켜쥔 대학생들로 가득 채워졌다. 대학 안과 밖은 밥값을 경계로 더욱 명확히 분리됐으며 대학은 자본을 끌어들이기에 혈안이다. 대학생들은 타자의 삶에 점점 무감각해진다.
인간에게 ‘밥’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대학에서 밥 먹는 사람들은 누구나 동일한 식당에서 동일한 밥값을 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대학생들은 반값 대학등록금을 주장하기에 앞서 대학 안팎의 경계를 나누는 밥값 ‘차별’ 정책을 스스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왜냐하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원과 대학 외부 사람들의 지지가 매우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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