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5.28 19:47 수정 : 2012.05.28 19:47

5월17일치 31면 ‘집단지성은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를 읽고

‘공정무역’이란 이름으로
돈 몇 푼 더 주면서
종속관계 숨기는 건 아닌지

 나는 소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문화도 소비를 통해 얻는다. 소비는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초록색 로고가 박힌 스타벅스 종이컵은 ‘감각적이며, 고급스러운 커피 취향’을,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의 아이폰은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인간’임을 보여준다. ‘된장녀’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고, 줄을 서가며 아이폰을 구매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소비 과정에서 우리가 마시는 커피가 팔레스타인에 떨어지는 폭탄이 될지도 모르며, 만능인 아이폰은 중국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라는 것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소비행태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대안으로 ‘착한 소비’가 뜨고 있다. ‘공정무역’ 상품들은 대표적인 착한 소비의 대상이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공정무역 상품은 커피다. 공정무역 커피는 기존 커피에 비해 10~20% 정도가 비싸다. 친환경으로 재배될 뿐만 아니라, 생산자의 노동에 ‘정당한’ 값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기존 커피콩 생산자는 커피콩 1㎏에 2달러 정도를 받는 반면 공정무역 생산자는 3달러에서 4달러를 받는다. 이 돈으로 생산자는 자녀를 학교에도 보낼 수 있고, 장기적으로 빈곤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공정무역 활동가들은 말한다. ‘공정무역 거래’ 대신에 ‘아름다운 소비’, ‘착한 소비’라는 말이 쓰이는 이유다.

 하지만 커피나 초콜릿 등 기호식품이 공정무역의 주된 대상이라는 것은 논쟁적인 지점이다. 기호식품의 상품화 역사가 서구 제국주의 식민지 수탈과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서구 열강들은 수탈을 위해 식민지의 자급자족 농업을 파괴한 뒤 단작 플랜테이션을 건설했다. 식민 지배는 끝났지만 제3세계 생산자는 여전히 부자나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값싸게 생산해야 한다. 공정무역 결과 생산자는 먹을 음식을 사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선진국과 제3세계의 종속적 관계를 끊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돈 몇푼 더 주면서 종속관계를 숨긴다. 이런 구조라면 생산자는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도 선진국 소비자들을 위한 커피콩과 카카오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착한 소비’는 그다지 착하지 않다. 공정무역 초콜릿은 생산자에게 좀더 높은 돈을 지급하는 것 외엔, 다른 무역 상품들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이곳까지 온다. 공정무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기존의 노동자들과 똑같이 힘든 노동을 하고 있다. 공정무역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얻는 집단은 공정무역 업체들이다. 생산지에서 이곳까지 오는 과정 또한 일반 상품들과 다를 바 없다. 똑같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시켜 환경을 오염시킨다. ‘착하고 아름다운’ 공정무역 거래의 현실이다.

 착한 소비는 ‘저렴하고 질 좋은’ 소비가 최고라는 통념을 깼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조금 비싸지만 ‘상생’, ‘녹색’ 등 더 큰 가치를 가진 물건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것만으로도 분명 가치 있는 흐름이고 성과다. 하지만 착한 소비만을 대안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착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 고민하는 소비를 넘어, 구조적인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착한’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도감을 지나치게 누린 것은 아닐지 되돌아볼 일이다. 이제 우리는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에코백을 들면서도 조금 불편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하늬/서울시 강북구 미아동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