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23 19:35
수정 : 2012.05.23 19:35
연신 ‘고객님’을 외치는 이들
일하는 기계 아닌 사람이지만
쉬는 모습조차 보이면 안 돼
대학원생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우리 엄마는 이름만 들으면 아는 한 대형마트의 회장이 아니라, 조리식품 코너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회장이었을 때는 ‘오~’ 했다가, 한 아주머니라고 하니 ‘에이~’라고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하루는 엄마와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께서 할인판매하는 우유를 미리 가지고 와 냉장고에 넣어두셨다고 합니다. 일이 밤 12시에나 끝나는데 그때가 되면 할인하는 품목들이 없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발각되었고 일주일 동안 출근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출근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 당연한 걸까요? 고객을 위한 것인데 직원이 미리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요? 그 할인판매하는 우유를 그냥 가지고 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값을 치르고 가지고 가겠다는 것인데도 일주일 동안 출근정지를 시킨 것은 과도한 조처라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 아주머니들도 고객인데 말입니다.
이 밖에도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아 일어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저것 물어보며 그 아주머니들과 대화를 나누긴 해도 은근히 무시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반말을 하며 하대하기도 하고, 실수로 발을 밟고도 사과하지 않기도 합니다. 눈이 마주쳤는데도 말이죠.
사실 저도 저희 어머니가 대형마트에서 일하시기 전까지는 그분들도 한 가정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얀 가운에 하얀 빵모자를 쓰시고 연신 ‘고객님’을 외치시는 그분들이 기계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주위에 정말로 많은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계셨습니다. 대형마트에서 일하시는 수많은 아주머니들뿐만 아니라, 버스나 지하철을 운행해 주시는 기사님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시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건물을 짓기 위해 힘쓰다가 더위에 지쳐 땅바닥에 쓰러져 주무시고 계신 아저씨들, 물건을 배달해주시는 택배기사님들, 대학교에서 화장실 문까지 깨끗이 청소해주시고 화장실에 모여서 쉬고 계신 청소 아주머니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종이를 주워 생활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분들입니다.
이분들은 대개 우리를 위해서 일해주시지만, 그들이 받는 인간적 처우는 형편없기 짝이 없고, 쉬는 모습조차 우리한테 들키면 안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불쾌해하기 때문이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있는 모습에 거부감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못된 심보입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며, 또 그들보다 우리가 나은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 한 ‘사람’이며 우리들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이고 할머니이고 할아버지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감히 그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제가 무언가를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분들을 존경하며 끝으로 이 세상의 많은 그분들에게 죄송하고 감사하단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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