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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카이스트 정상화, 기득권 실체부터 밝혀야 |
최승철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총장께서 임기 2년을 약속하면 교수협의회도 적극 도와 ‘명예로운 퇴임’이 될 것 같다. 4년 임기를 고수하면 더 큰 저항에 부딪혀 ‘불명예 퇴임’을 맞아 (학교와 총장 모두에게) 불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논리나 적법성 여부를 떠나 결정을 내려주길 바란다.”
2011년 10월 한 대학교수가 같은 대학 총장에게 사퇴하라며 내건 거래조건이라고 한다. 거래는 불발됐고,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났다. 그간 학교 사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 그 학교에선 교수들이 펼침막을 들고 ‘도덕성, 무능력, 소통 부족’ 등을 이유로 총장 사퇴 운동을 벌인다. 총장 쪽은 일부 특권적 교수사회에 대한 도전(총장)과 저항(교수)이 갈등의 본질이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이들의 갈등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학생들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7개월 전 그 교수의 경고 그대로 학교는 ‘불행’을 겪고 있는 듯 보인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거취를 둘러싼 이 ‘거래설’의 진상은 지난 18일 한 언론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유력한 교수가 총장 측근을 만나 ‘명예로운 퇴임’과 ‘더 큰 저항’을 번갈아 언급하며 중도 퇴임을 제안했다는 내용이다. 보도가 사실이면 카이스트 사태는 지금까지와 다른 양상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교수들이 1년간 20여차례씩이나 사퇴 이유서를 썼을 땐 서 총장이 그만큼 잘못했거나, 반대쪽이 조직적인 사퇴 운동을 기획해 왔거나 두 가지 맥락으로 봐야 했다. 거래설은 카이스트 사태의 배경으로 서 총장의 잘못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거래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특권적 사고와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 교수집단이 특정인의 임기를 정해주고, 거래 향방에 따라 환호냐 저주냐를 결정하려 한 것은 대학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다. 거래 성사 여부가 국가기관장에 대한 업적 평가를 180도 뒤집을 수 있다는 인식은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교수협의회를 동원할 수 있다는 발상도 정치적 집단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논리나 적법성 여부를 떠나 현명한 결정을 내려달라”는 요구에 담긴 초법성이다. “카이스트에 불행”인 줄 알면서도 목적을 이루겠다는 속내도 도가 지나치다. 정당한 권리 행사인 것처럼 특정 이해집단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관행을 우리 사회는 ‘기득권’이라고 부르며 이를 경계해 왔다.
물론 교수가 총장에게 거래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총장이 오죽했으면 교수들이 그랬을까”, “총장이 이번에도 버틸까” 등에 내포된 심리적 반감, 실증적 비판까지 옹호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두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특권적 교수세력’이라고 불리는 기득권이 실재한다고 볼 근거가 생겼고, 그것이 ‘뒷거래’ 방식을 통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분란의 실체를 기득권에 대한 견제 대 저항의 구도로 보는 시각은 근거 없는 견해만은 아니다. 카이스트야말로 대학 사회 기득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주장도 충분히 나올 법한 일이다.
상식과 민주에 역행하는 특권세력이 상아탑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친서(남표)니, 반서(남표)니 진영을 따지며 한쪽의 주장으로 치부하거나 외면할 수준을 넘어섰다. 한 해 5000억원에 가까운 세금이 들어가는 국가기관이 이 지경이 되도록 우리는 왜 아무것도 견제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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