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16 20:04
수정 : 2012.05.16 20:04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이 글은 한숨에 섞여 나오는 피눈물의 얼룩임을 미리 밝힌다. 나는 얼마 앞서 사람들을 따라 청와대 앞 골목까지 갔다가 경찰에 막힌 적이 있다. 밀어도 안 되고 청와대 높은 이 나오라고 소리를 질러도 안 돼 그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내 도녘(목표)은 높은 이를 만나 물으려고 간 것이다.
이참 대한문 옆 길바닥엔 이명박 정권에 죽은 쌍용자동차 노동자 22분의 분향소가 있다. 우리네 문화에 따르면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사람이 죽으면 막걸리라도 들고 문상을 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는데 문상을 아니 오는 건 무엇인가. 더구나 높은 이라면 그 시민을 보살펴야 할 사람. 그런데도 문상을 아니 온다는 것은 이어서 사람을 죽이겠다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런 마음은 턱도 없어 무거운 발길을 돌리는데 문뜩 8·15 해방 뒤 마포 나루터의 매서운 겨울이 떠올랐다. 일제에 쫓겨 저 멀리 북만주와 그 너머 서백리아에서 살던 사람들이 해방된 고향이라고 찾아왔으나 갈 데가 없어 강가에 즐비하게 가마니때기를 덮고 쿨럭쿨럭, 그러다가 숨을 거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가마니때기를 들쳐보다간 울고 또 울다가 끝내 입었던 외투를 벗어주고 울면서 가는 할아버지가 있었으니 그게 누구였을까. 백범 할아버지였다. 그 뒤로 백범 선생은 그런 덮개를 입어보질 못하고 돌아가시던 모습이 떠올라 눈앞이 트릿했다. 그때 백범 선생은 그 추운 겨울 외투만 벗었던가. 아니다, 해방정국에 휘말릴지 모르는 삐딱한 마음, 자기중심적 생각 같은 걸 벗어버리고 오로지 통일, 사람과 하나 되는 통일만 남기고 모든 걸 벗어던졌던 것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교섭에 나오라고 한창 북적일 적이다. 평택엘 갔더니 그건 침략 전쟁이었다. 눈 부라린 경찰이 공장을 몰아치고 그 위로는 잠자리비행기(헬리콥터)가 와릉와릉, 무언가 뿌리고 쏘아대고, 옥상에서 쫓기는 노동자들을 몽치로 짓모으고 노동자 가족들은 우리 아버지, 여보가 죽는다고 발을 구르고. 나는 그저 네 이놈들, 이놈들.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었으랴. 부실경영은 노동자한테 씌우고, 헐값에 공장을 이리 팔고 저리 팔아먹는 사기협잡은 옹호하면서 해고만이 공장을 살린다는 거짓말에 맞서, 그때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 교섭에 나서라며 참을 수 없는 양보도 했었다. 그런데도 그 잔인무도한 때려잡기를 눈으로 보지도 않고 잘했다고 하던 청와대 높은 이.
그는 또 뭐라고 했던가. 뭐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그래서 가장 가까운 여럿이 줄줄이 돈을 먹다가 감옥엘 가는데도, 한 공장 노동자 22명이 네 해 동안 22명이나 죽었는데도 이를 두고 비극이라고 우길 엉터리 미학이 또 있을까. 이건 비극이 아니라 범죄다. 제아무리 뭐라 해도 청산해야 할 끔찍한 범죄이니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기껏 붓이나 들어 말한다.
이명박, 이 정권의 핵심이 나서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언제 어떻게 나서야 할까. 간단하다. 차비도 필요 없다. 청와대에서 걸어서 20분이면 대한문 앞 분향소로 와서 우리네 전통문화에 따라 잘못했다고 허리를 굽혀라. 연극으로 뉘우치라는 것도, 정치적 모양새나 잡으라는 것도 아니다. 그게 바로 이 땅에서 노동자들을 더는 죽이지 않겠다는 뜻은 될 터이니 우리 전통문화에 따르라, 그 말이다.
이명박 정권이여, 하늘도 거울로 삼는 쪽빛이라는 걸 아는가. 무지 쏟아붓던 비가 그치며 방긋이 열리는 하늘을 두고 쪽빛이라고 하는 줄 아는가. 아니다. 이름 없는 무지렁이들의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이야말로 하늘도 거울로 삼는 쪽빛이라고 했다. 그 쪽빛은 이참 어디서 빛나고 있을까. 바로 대한문 쌍용자동차 노동자 분향소에 있으니 가서 자기를 어려보라 그 말이다. 과연 내가 사람인가 아닌가, 과연 내가 정치를 하고 있는가 망치를 하고 있는가 어려보라는 것이다. 만약에 하늘도 거울로 삼는 쪽빛을 두고도 어려보질 않을 것이면 어떻게 될까.
이 땅에선 또다시 세기의 범죄와 싸우는 쪽빛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일러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 쪽빛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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