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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16 18:36 수정 : 2012.05.16 18:36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수학여행비 못 낸 아이들 셋
결국 미납이면 못 가는 건데
다음날 전화가 걸려왔다…

김환희 강릉 문성고 교사

2학년 수학여행(2012년 5월15~18일)을 앞두고 담임선생님의 가장 큰 고민은 아마 수학여행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일 것이다. 사실 물가상승에 비례하여 책정된 수학여행비가 일부 학부모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없기에 수학여행에 참가하기로 한 모든 학생은 각자 그 비용을 해결해야 할 실정이다.

목요일(10일). 수학여행 건으로 2학년 담임 긴급협의회가 있었다. 안건은 수학여행을 앞두고 반별 수학여행비 미납자에 대한 문제였다. 학년부장은 행정실에서 출력해 온 반별 미납자 명단을 해당 담임에게 나눠주며 금주 내 해결해 줄 것을 주문하였다. 재적 학생 32명 모두가 참가하는 우리 반의 경우, 3명의 학생만 미납된 상태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퇴근 무렵, 3명의 아이를 조용히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수학여행비를 금주까지 해결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2명의 학생은 금주 내 해결할 수 있다고 하여 다행이었으나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한 아이의 경우, 장담할 수 없다며 걱정하는 눈치였다.

“선생님, 수학여행비 제날짜에 내지 못하면 어떻게 돼요?” “무슨 방법이 있겠지.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라.”

그 아이가 걱정할까 방법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는 했지만 사실 별다른 해결책은 없었다. 아무튼 수학여행 출발 전까지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고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의 출석을 점검하고 난 뒤, 교무실로 돌아와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았다. 잠깐 사이에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걸려온 것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발신인이 ‘발신번호 표시제한’이었다. 스팸 전화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잠시 뒤,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부터 또 전화가 걸려왔다. 만에 하나 장난전화면 핀잔이라도 줄 요량으로 전화를 받았다.

중년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2학년 ○반 담임선생님이세요?”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

“여보세요? 누구세요?”

“….”

거듭 누구냐고 물어도 상대방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조금씩 화가 났다. 언성이 높아졌다.

“여보세요? 전화를 걸었으면 말씀을 하셔야죠?”

그제야 상대방이 작은 목소리로 답을 했다.

“수학여행비 때문에….”

순간, 전화를 건 사람이 아직 수학여행비를 내지 못한 한 학생의 어머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어도 다음주 월요일까지 학교 행정실에 직접 내시면 됩니다.”

“그게 아니라, 학급에 수학여행비를 내지 못한 한 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제 딸에게 들었는데 제가 대신 내주고 싶은데 괜찮은지요? 제 딸 또한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요.”

어머니의 말에 경솔하게 행동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어머니는 누구인지 절대로 밝히지 말라는 딸의 말을 전했다. 그 착한 수호천사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그 문제는 담임인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튼 어머님의 전화를 받으니 힘이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따님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어머니는 웃기만 했다. 결국 난 그 어머니의 딸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한 채 전화를 끊어야 했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한 제자와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이 내게 잔잔한 감동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날 오후, 우리 반 세 명의 아이들 모두가 수학여행비를 완납했다. 그리고 종례시간, 아침에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수선을 떨었으나 아무도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비록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제자의 담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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