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14 19:35
수정 : 2012.05.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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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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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통합진보당의 학생당원입니다. 작년 5월, 온 전국 광장이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대학생들로 가득했을 때, 그 모든 외침이 제도권 정치에 반영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통합진보당에 가입했습니다.
요즘 대학가는 4·11 총선을 기점으로 그 어떤 때보다 정치에 대한 담론이 많아졌습니다. 더 많은 대학생들이 등록금 문제는 정권의 의지만 있다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참여당과 합당을 통해 정치적 외연을 키운 통합진보당에 대한 주변 대학생들의 반응은 “그래도 민주당보다는 낫지”, “원내정당 중에선 제일 신뢰가 간다” 등의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저도 덩달아 당원으로서 뿌듯하고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터져버린 이후로 저는 제가 당원이라는 사실을 밝히기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당내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대리투표, 중복투표 등 다양한 부정투표가 발견되었다는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 이후 저는 초조하게 하루빨리 당이 수습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심 조사 결과 전체를 신뢰하지 못하더라도 일부 명백하게 부정을 저지른 지점에 대해서는 이정희 대표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실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고쳐나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책임을 돌리고 명예훼손으로 법정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이정희 대표의 안하무인격 발언으로 저와 제 주위의 친구들은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렇게 ‘진보의 꿈’을 믿었던 친구들은 하나둘 진보정치에 대한 허탈감과 회의감에 빠져버렸고, 일부는 진보정치 전반에 대한 냉소적 야유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통합진보당 당직자로 일했던 대학 선배로부터 학생당원을 모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대학 총학생회 회장이던 시절엔 열댓명의 간부들에게 가입원서를 건네주고 그 자리에서 한번에 가입시켰다는 무용담과 함께 운동권이 거의 사라진 오늘날 대학 학생회를 한탄했습니다.
하지만 선배의 그러한 일방적인 ‘의도’가 아이들로 하여금 괴리감을 느끼고 떠나게 한 요인이 아닐까요. 대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이 처한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가입부터 시켜놓고 자신들이 믿는 낡은 신념들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운동권 내의 관행들이 문제이지는 않을까요.
이는 지금 통합진보당이 처한 상황의 원인과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고액 등록금의 원인이 민족분단에서 기인했다’는 이념의 경직성과 논리적 비약은 둘째 치더라도, ‘우리가 하면 모든 것이 옳고 합당하다’는 식의 태도와 관행은 지속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시켰고, 심지어 그 점에 대해 놀라울 만큼 담담하기까지 한 통합진보당의 모습에 시민들은 더 큰 괴리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은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에 조직의 결정에 따르기보단 합당한 문제제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독립적 성향이 강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반 시민들의 눈에는 동지애로 부정을 눈감아주고 잘못된 관행을 덮어주는 통합진보당의 행동들이 ‘비상식’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던 통합진보당이 상식과 가장 멀어진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저는 통합진보당이 내부의 관행과 폐쇄적인 동지애를 벗어나 더 많은 학생들과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지지를 받는 대중정당이 되길 희망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진부한 조직논리에서 벗어나 정직하고, 투명하고 상식적인 정당으로 변해야 할 때입니다.
구소라 대구 통합진보당 학생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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