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14 19:34
수정 : 2012.05.14 19:34
명백한 민주 절차 훼손에도
“근대형사법의 상식” 들먹이며
지키고 싶은 게 대체 무엇인지…
이정희 대표님. 지난 7일 대표단회의에서 자신의 심경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유했던 게 생각납니다. 대표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이 별로 없고, 언론과 정치권의 비판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그 속에서 외로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대표님을 생각하니 대학생인 제 마음이 아픕니다. 그만큼 이정희 대표님을 존경했습니다.
청년실업률은 높아지고 대학이 취업시장의 볼모로 잡혀 있을 때 대학공동체는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이 제 눈앞에 보였습니다.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도, 공장에서 고용주에게 언제 해고당할지 몰라 떨고 있을 비정규직 노동자도, 모두 동등한 인간의 권리를 향유할 가치 있는 사회구성원이라고 말하셨지요. 희망버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강정마을 때에도 당신은 차디찬 아스팔트에 앉아 국민들과 삶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당신과 국민들의 삶 사이에는 뜨거운 눈물이 배어 있었습니다.
이 눈물! 국민들이 그동안 정치인에게 얼마나 바랐던 것입니까. 거짓과 허위, 부패와 부정이 진동하는 정치권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은 진심을 다해 울어주는 정치인 한명을 얼마나 원했는지 모릅니다. 대표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와 정치적 견해는 달라도 서로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정치적 삶도 함께 공유할 수 있겠구나라고 말입니다. 진영논리가 사라진 성숙된 민주주의가 실현되길 희망해보기도 했습니다.
이정희 대표님. 하지만 최근에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의혹을 바라보는 당신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진상조사단의 보고서가 납득할 만한 수준인지 여부를 떠나서, 이를 바라보는 대표님의 태도가 성숙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겐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경선을 두고 부정이냐 실수냐의 표현을 떠나 의도가 어찌됐건 투표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훼손됐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대표님은 10일 열린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앞으로 낱낱이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사람은 가장 무겁게 책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 국민 앞에 진정성을 정치적 생명으로 내보이셨던 대표님께서 당의 책임감을 통감하셨다면 우선 경선의 불미스런 일에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국민 앞에 다가가셨어야 합니다. 그게 의회정치의 책임윤리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당신은 경선 파문에 대해 “유죄의 증거가 없으면 무죄다. 이것이 근대형사법의 상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국민의 삶 속에 눈높이를 맞춰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던 당신이 근대형사법이라는 전문지식을 동원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국민들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당을 지지해준 당원의 명예가 중요했겠지요. 더구나 통합진보당은 진성당원제로 운영되기에 당원과의 신뢰가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이번 경선을 비판하는 당원도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국민들 다수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에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지금껏 흘린 눈물은 당권파의 명예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에 통합진보당이 선거에서 원내 3당으로 진출하기까지는 선거 득표율 10%라는 국민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 아닙니까.
이정희 대표님. 대학생활을 하면서 당신을 통해 제가 느꼈던 삶의 가치관, 그것은 권력에 편승해 개인의 영달만 추구하는 삶보다, 힘들지만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사는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제 삶에 회의가 든 적은 없습니다. 대표님. 당신이 흘렸던 그날의 눈물이 그립습니다. 계파의 이익을 손에 놓지 못해 몸부림치는 한 여성의 절규가 아니라, 부르트고 갈라진 국민의 손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어머니의 눈물 같은 사랑 말입니다.
전영진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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