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스승’이라는 말의 의미 |
정용섭 한국폴리텍III대학장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성공 비결이 있다. 스승을 잘 만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는 사람도 있다. 또 직장 상사, 친구를 잘 만나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스승을 잘 만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자는 <논어> 술이편(述而篇)에서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즉 “세 사람이 길을 가더라도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는데 이는 그들 중 좋은 점을 가진 사람의 장점을 가려 이를 따르고, 좋지 않은 점을 가진 사람의 단점으로는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스승이라고 하면 대체로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훌륭하지 못한 사람도 모두 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는 좋은 점을 가진 사람을 스승으로 삼는 것은 물론이고, 좋지 않은 점을 가진 사람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이미 2500년 전에 적시한 명쾌한 말씀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훌륭한 스승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은 배우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 비로소 그 눈에 스승이 들어오며, 스승을 따르려는 마음을 품게 된다. 또한 스승과 제자가 서로 존중하며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진정한 스승과 제자 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요즘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학생의 잘못을 훈계한 교사를 폭행하거나 체벌을 가한 교사를 경찰에 신고하는 기사, 왕따를 당하는 학생을 그대로 방치하여 꽃다운 나이에 자살을 선택하게 된 가슴 아픈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우리 사회에 스승과 제자 간의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엷어져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지성인들의 요람이라는 대학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학생들이 교내에서 교수에게 인사하지 않고 외면하는 예는 이미 다반사가 된 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의실에 들어가 보면 지우지 않은 흑판, 널려 있는 종이컵, 빈 캔, 휴지 등은 너무나 익숙한 강의실 풍경이 되었다. 교수들도 이러한 학생들을 보아도 지적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옛날에 제자들은 군사부일체라고 하여 스승의 지위를 임금이나 아버지에 비교하거나, 제자거칠척사영불가답(弟子去七尺師影不可踏)이라 하여 제자가 스승을 따를 때는 7척 거리를 두고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았으며, 스승은 청출어람이라 하여 본인보다 뛰어난 제자를 키워 내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겼던 것을 생각하면 사제 간의 관계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하겠다. 스승을 항상 경외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도 바른 시각은 아니나 스승을 존중하고 제자를 아끼는 마음가짐과 태도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대학에 부임한 뒤 가끔 학과를 방문하면 밤늦게까지 실습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면서 때로는 친구처럼 어울리며 고민을 해결해주고 상담해주는 교수와 학생들을 보게 된다. 그럴 때면 아직 우리의 교육현장에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사제 간의 따뜻한 정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어 더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미래 교육의 희망을 보는 것 같다.
흔히들 이야기하기로 교육자에게 주어지는 최대의 찬사는 ‘스승’이라고 한다. 이번 ‘스승의 날’을 계기로 가르치는 모든 이들에게 누구나가 서슴없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스승님’이라고 호칭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이 하루빨리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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