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09 19:28
수정 : 2012.05.0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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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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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니라
내 필요에 따른 입양이라면
인권의 본질을 곱씹어볼 때다
박희정 유엔협회세계연맹 근무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폐허의 땅 한국은 참 가난했다. 그래서 정부는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서라도 살려내자는 의도에서 고아와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정부의 입양정책이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매년 1000명의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있다. 1970년대까지 절대적인 가난이 입양의 근본 원인이었다면, 이제는 소득불균형과 상대적인 가난으로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이유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실 나는 입양인들과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입양단체와 10년간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수많은 가슴 아픈 이야기와 감동적인 순간을 경험하며 함께 울었다. 언어장애, 양부모와의 불화, 사회부적응과 비행으로 형사처벌되어 한국으로 추방된 경우까지 다양하다. 언론에 소개되는 끔찍한 사건으로는 양부모로부터 폭행당하고 살해당하는 경우, 그리고 이와 반대로 양부모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경우다. 스웨덴 정부에서는 또래의 현지 청소년과 비교해 한국에서 입양되어온 청소년의 마약·폭행 및 비행률이 3~4배, 여성의 경우 5배 이상 높고, 자살률도 2~3배나 높다는 연구자료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해외입양의 문제를 찬성·반대로만 따진다거나 입양사후관리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세계인권보고서에서 우리 정부에 보내온 권고안의 핵심인 입양에 관한 규제 및 감독을 위임받은 정부기관을 만들어, 좀더 적극적으로 국내외 입양과 입양사후관리를 전담하고 음성입양을 처벌하는 조항을 만드는 등 큰 구실을 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입양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무엇이며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그 원인을 찾는 데 무엇보다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다. 올해 보건복지부 통계는 적어도 내겐 충격적이었다. 국내입양인 총 1548명 중 1452명(전체의 93.8%), 해외입양의 경우 총 916명 중 810명(88.4%)이 미혼모의 아이들이었다. 특히 자신의 아이를 외국으로 입양 보낸 미혼모 810명 중에 무직이 526명(65%)으로 가장 많았다.
가난이 꼬리를 물고 또다른 가난과 비극을 만들어낸다. 입양에서도 똑같은 모습이 보여진다. 나는 한국의 입양기관에서 일하며 입양인들과 미혼모들의 실태 및 사후관리 입법에 대해 연구하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다. 미혼모들은 임신 사실을 대부분 숨기며 시설에서 몰래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혼모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머물 수 있는 시설은 25곳이다. 이 가운데 17곳이 입양기관에 의해 운영되는데, 거기 머무르려면 먼저 아이를 입양시키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특히 재정적으로 궁박한 미혼모들의 양육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과 함께 입양기관의 욕심도 의심이 간다. 입양기관이 아이를 국내 부모에게 입양 보내는 경우엔 소개비가 200만원 정도인 반면, 외국으로 보내면 2000만원에 가까운 소개비를 받는다. 스웨덴 한국입양인 토비아스 후비네트(한국명 이삼돌) 박사가 해외입양을 결사반대하며, 입양기관의 해외입양은 ‘입양 비즈니스’라고 한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해외입양 문제는 가난이라는 큰 범주에서 접근해야 하며, 사회적 약자인 미혼모와 저소득층 문제가 해결될 때라야 비로소 입양과 입양인들의 인권 문제가 해결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을 교육, 인프라, 복지, 제도와 법, 사회적 인식 등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소장을 맡고 있는 송상현 교수님이 세계은행 행사에서 기조연설 때 발표한 자료를 보내준 적이 있는데, 궁지에 몰린 빈곤 퇴치 프로젝트에 활기를 불어넣고 개발의 명쾌한 방향을 제시한 사법과의 상호협력이 개발에 핵심 구실을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지금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한 입양이라면, 곱씹고 인권의 본질에 대해 다시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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