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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18 19:50 수정 : 2012.04.18 19:50

신남호 교사·참배움학교연구회 운영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늘 거의 최하위를 면치 못하는 한국의 중·고교 학급당 학생수는 대도시의 경우 35~36명, 경기도 고양시의 경우 45~46명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지역에 모여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밀학급의 문제는 단지 지역적인 특성이라고만 할 수 없다.

학교 간 학력차가 있어서 교실수업을 이해하는 정도는 다르지만 대다수의 학교, 그중에서 인문계 공립학교의 경우 수업에 열중하는 학생이 3분의 1 혹은 절반 정도이다. 나머지 3분의 2 혹은 절반은 수업에서 전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더욱이 고교 교육과정에서 접하는 개념들이 좀더 난해하고 공부량도 늘어나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집중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장래 희망에 따른 수업선택권도 사실상 배제된 채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하게 부과되는 수업시간에, 수업의 흐름과 함께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하루 종일 붙박이 교실에서 견디기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상태에서 아이들의 탈출구는 또래 아이들과 잡담하기, 거울 보기, 낮잠 자기, 과자 먹기 등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데서 낙을 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학생의 자살, 가해 학생들의 전과기록, 학생과 교사 모두의 인권침해 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너무도 높으며 실제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중·고교의 하루 일상은 성취감보다는 상실감이 우세하다.

아이들이 많이 떠들면, 교사는 수업 분위기를 진작시켜 성실한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잡담하는 아이들에게 벌을 주거나 꾸중을 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착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놀라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험악하고 경직된 분위기는 모두에게 견디기 힘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지적 호기심과 배움을 매개로 맺어지고 평생 유지되어야 할 사제간의 사랑과 존경심이 산산조각 난다. 이 시간 이후 설령 공부 분위기가 유지된다고 해도 학생들과 교사 모두 수업 때마다 만나는 것이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과밀학급이 오랫동안 방치됨으로써 수업은 오로지 교사의 설명으로 진행되고 단편 지식이 아이들의 정신에 주입된다. 학생들의 발표·질문·토론이 사라진 우리의 교실에서 아이들의 다양한 지적 호기심, 비교, 종합, 비판 등의 고차적 정신능력이 정지되면서 그저 졸지 않으면 다행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만족의 기준이 얼마나 추락해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아이들의 상상력이 실종된다.

오늘도 중고생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의 인성이 메마르고 애틋한 사제관계는 이제 상상 속에서만 그려지고 있다고 한다. 과밀학급은 이런 불행한 사건들의 발원지이다. 이를 방치하는 정부는 이제 학생 문제의 발생과 해결의 최종 책임을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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