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18 19:49
수정 : 2012.04.1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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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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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지난 3월30일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의 한 주택 반지하 방에서 동거중이던 정신장애인 남녀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시신이 심하게 부패된 상태에서 발견된 박아무개(47)씨와 김아무개(42·여)씨는 둘 다 정신장애 3급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정확한 사망원인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황상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비관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살아있을 때 이들의 생계수단이 박씨가 매달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43만원과 장애연금 3만원, 합쳐서 46만원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확인 결과 박씨는 정신장애 외에도 지병을 가지고 있어서 몸이 많이 불편했다. 그래서 생계비 외에 치료비도 필요했는데, 46만원으로는 생계와 치료 어느 것 하나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이상 삶을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2월1일에는 서울 송파구 오금동 한 임대아파트에서 정신장애 2급 신아무개(45)씨와 일용직 근로자인 그의 형 신아무개(46)씨가 동반 투신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 형제 또한 형이 인력시장에서 일을 찾지 못해 장애를 가진 동생이 받는 한달 생계비 40만원과 장애연금 15만원이 생계비의 전부였다. 당시 이 사건을 다룬 한 언론기사는 형제가 생활했던 방에 가보니 빈 라면봉지만 나뒹굴고 있었다고 썼다. 얼마나 생활고가 극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한계상황에 처한 장애인들의 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따져보면, 이어지는 장애인 자살의 일차적인 원인은 한계에 처해서 낭떠러지로 몰려 있는 장애인들의 개별 상황을 현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복지제도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성남시에서 사망한 박씨의 경우, 지병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생계비 외에 치료비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러나 박씨의 몸이 아픈 상황은 현 복지제도에서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금동에서 투신자살한 신씨 형제의 경우는 임대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로 월 20여만원을 내야 했다. 한달 생계비 55만원에서 임대료 20만원을 내고 나면 사실상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현 복지제도에서는 이런 어려운 상황 또한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시 성남시 사건을 살펴보면, 사망한 채로 발견된 여성 김씨의 경우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집을 나와 살고 있었는데도 부모의 동거인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에서 제외됐다. 오금동 사건의 경우도 형은 간절히 일자리를 원했지만 건설경기 침체로 일용직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만약이지만 이 두 가정이 놓여 있었던 개별적인 어려운 상황이 고려돼, 같은 형편의 장애인과 동거중이던 김씨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보호해주고, 또 장애인 동생을 돌보고 있던 형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까지 한시적으로라도 생계비를 지원해줬으면 이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인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주민센터 관계자 등은 현재 있는 법과 제도로 보호해줄 수 있는 방안은 모두 다 지원했다며, 자살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 현재 주민센터 사회복지사 한 명이 담당하는 기초수급대상자가 300가구에서 400가구에 이르기 때문에 수급자 개별 가정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복지제도다. 현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장애인 복지제도가 생계수단이 없는 장애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법에 그렇게 규정돼 있기 때문에, 1인당 생계비 월 40만원과 중증장애인에 한해 15만원의 장애연금을 주는 게 전부다. 한계상황에 놓인 장애인이 어떤 열악한 주거공간에서 살고 있는지, 어디가 아픈지, 턱없이 부족한 생계비 때문에 밥을 굶고 있지는 않은지 여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처럼 ‘딱 그만큼의 복지’가 장애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와 사회는 장애인들의 이어지는 자살을 불우한 장애인들의 죽음으로만 치부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또 어디서 자살을 생각하는 장애인이 있을지 생각만 해도 두렵다. 잇따른 장애인들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사회가 한계상황에 처한 장애인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주길 간곡하게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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