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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16 19:35 수정 : 2012.04.16 19:35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한민족이라는 감성적 구호에는
애틋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막상 현실 속에서 내 이웃으로
다가왔을 때는 거부감을 갖는다면…

목란은 평양예술학교에서 아코디언을 전공했다. 촉망받는 예술가였던 그는 뜻하지 않게 밀수 사건에 얽혀 탈북을 결심한다. 그러나 남한 생활은 녹록하지 않다. 목란은 브로커에게 속아 정착금과 임대아파트 보증금까지 날린다. 남한 사회에 환멸을 느낀 그는 차라리 북에 다시 돌아가 부모와 같이 살겠다고 결심한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다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한다. 연극 <목란언니>는 현실에 스며들지 못하고 경계에 놓인 탈북자의 삶을 그린다.

탈북자 2만명 시대, ‘목란언니’는 더이상 연극 속 얘기만이 아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목란언니들은 오늘도 국경을 넘는다.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남쪽에 있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저마다의 꿈을 안고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사람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쉽게 등지기 어렵다지만 목란언니에게 북한은 ‘고통의 땅’일 뿐이다.

그러나 목숨을 건 탈출에도 고통은 쉽게 목란언니를 놓아주지 않는다. 북한과 국경을 맞댄 중국은 탈북자를 국제법상 보호가 필요한 난민으로 보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이들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국경을 넘은 불법체류자로 간주해 북한과의 협조하에 이들을 강제송환한다. 중국 사회과학원에 따르면 중국은 1998년부터 10년간 매년 적게는 4800명, 많게는 8900명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냈다.

북한으로 돌아간 이들이 얼마나 끔찍한 처벌을 받는지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노예처럼 생활하고, 종일 강제노역에 시달린다. 폐쇄된 수용소 안에서 평생을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살아야 하는 이들을 단순 월경자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한-중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외교 마찰도 이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탈북자 강제송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기존의 조용한 외교 대신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 이 문제를 제소했고, 별도의 한-중 외교장관회의도 개최했다. 중국이 장기간 체류중이던 일부 탈북자의 한국행을 승인한 것도 우리 정부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목란언니는 고생 끝에 도착한 이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기대와 달리 이들을 맞이하는 건 편견에 갇힌 시선뿐이다. 한국인과 탈북자의 경계는 명확하다. 탈북자를 지원하는 교회라고 하지만 탈북자는 예배를 볼 때는 물론 식사를 할 때도 한국인과 같이 앉지 못한다. 일자리를 구할 땐 목란언니의 설움은 더욱 커진다. 중국동포보다 낮은 임금은 그들을 ‘3등 국민’으로 몰아간다. 이 때문에 한국 국적을 얻어도 다시 제3국행을 택하는 탈북자는 점점 늘어간다.

한민족이라는 감성적 구호에는 애틋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막상 현실 속에서 내 이웃으로 다가왔을 때는 거부감을 갖는 것, 지금 대한민국이 목란언니를 대하는 현실이다. 탈북자 강제송환 해결과 함께, 주변의 목란언니부터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지난 7일 막을 내린 연극, <목란언니>를 기획한 김요안 피디의 말은 그래서 더 와 닿는다. “분단의 경계선은 지도 위가 아닌 우리 머리와 가슴속에 먼저 그어져 있습니다. 그 경계선 위에 ‘이웃의 경계인, 목란언니’는 지금 불안하게 서 있습니다.”

서영지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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