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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16 19:32 수정 : 2012.04.16 19:32

선거 결과를 보다 눈물이 났다. 단지 야권의 패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다수 유권자의 뜻이라면 그것을 따르는 것도 민주주의의 규칙이고, 또 이것은 반복된 경험이었기에 무디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것은 어떤 의미를 부여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대성씨의 당선 때문이었다. 지역주의가 가져온 정치 풍조의 병적 양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당선은 이 사회의 공정함과 정직함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고, 노력하는 많은 젊은이에게는 패배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문대성의 당선 논란이 확산되자 새누리당은 그의 출당을 고려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이미 승리한 총선에 ‘도덕성’이란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태도는 ‘전략적’으로 옳을 수 있다. 한편에서는 그것을 ‘쇼’라고 폄훼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받은 상처의 일부는 회복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할까? 문대성이 새누리당으로부터 ‘팽’당하더라도 그를 뽑은 지역구민은 어떻게 되는가? 문대성의 당선은 그가 참신한 정치인이라서가 아니라 부산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의 틀에서 치러진 이 선거에서 부산 사하의 주민들에게 그 틀을 넘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그런 인사를 이제 와서 출당시킨다는 것은 문대성에 관련된 도덕적 책임 문제를 지역구민에게 전가시키고 새누리당을 믿었던 그들을 ‘팽’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역주민에 대한 명백한 배신 행위다.

결국 이 문제는 출당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그 시작은 제대로 검증된 인사를 하지 않은 새누리당 공천 시스템의 문제다. 근원적으로는 대한민국 선거의 병적 양상인 지역주의가 가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누구를 공천해도 우리의 강세 지역이니 뽑아줄 거라는 안이한 인식에 사하구민도, 우리 국민도 모두 상처받았다. 이 틀에서 보면 문대성 역시 거대 정당의 이해관계에 휘둘린 불행한 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왜 이렇게 정당으로부터 ‘팽’당하는가? 이번 선거는 피해자가 너무 많다.

김동규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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