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11 21:23
수정 : 2012.04.11 21:23
예상되는 모든 사항을 완벽하게
조정한 후에만 새 제도를 도입한다면
제도 개혁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2012년 4월4일치 30면 ‘한겨레 프리즘’ 난에 실린 강희철 기자의 ‘개혁유감’이란 제목의 글, 잘 읽었습니다. 로스쿨 도입을 위해 애쓴 사람들 중 유독 저만 실명을 거론하셨더군요. 그만큼 저의 책임이 크다는 말씀이시겠지요. 제가 부담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도입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에 대해서까지 운영 과정에 관여하거나 결정할 위치에 있지 않았음에도 비난받아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민변의 한 원로 변호사께서 “로스쿨 도입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제기조차 찬성론자들이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줘가면서 반개혁으로 몰았다”고 전한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합니다. 당시 민변 회원 중에도 로스쿨 도입에 반대하는 분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에, 찬성 입장과 반대 입장을 대표하는 회원이 각각의 논거를 제시하고 서로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반대 입장이라고 해서 반개혁으로 몬 것은 아닌데,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느끼셨다면 그분께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제가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으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의 실무를 담당할 때는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에서 결정된 내용을 법안으로 성안하는 단계여서 선택의 폭이 좁았습니다. 로스쿨 도입은 사개위에서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단일안으로 건의되었기 때문입니다. 사개위에서 의결할 때 저도 로스쿨 도입에 찬성했습니다. 논의 초기에는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지만, 국민과 유리된 법조의 폐쇄성과 관료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조 인력의 선발 및 양성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시험성적으로 법조인을 선발하는 사법시험과 국가 주도로 획일적으로 교육하는 사법연수원 제도를 유지해서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법조인을 배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배출된 현시점에서 로스쿨 운영에 대해 만족할 만한 평가가 내려지지 않는 현실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강 기자의 글에 제시된 로스쿨에 대한 평가의 논거는 달리 볼 측면도 있습니다.
몇몇 로펌 대표변호사의 “로스쿨 졸업생이 연수원 출신보다 뭐가 나아진 건지 모르겠다”는 대답이 로스쿨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변호사 자격 취득 시점 기준으로 로스쿨 출신의 실무 처리 수준을 연수원 출신보다 높이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한 것은 아니고, 또 개인별 편차가 있는 것은 어느 제도나 마찬가지입니다.
장학금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재 로스쿨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많은 로스쿨생들이 공익인권법학회 등 공익적 활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장학금 받고 로스쿨을 마친 변호사 중에서 제2의 노무현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장학금 확대, 학자금 대출 뒤 공익활동 근무시 상환 면제 등의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변호사시험은 원래 자격시험을 예정했었으나, 운영 과정에서 합격률을 통제할 수 있는 형태로 되었고, 시험과목과 방식도 특성화 교육을 살리지 못하는 방향으로 되었습니다. 상대평가제도는 변호사시험 합격률 결정 과정에서 채택되었는데, 그로 인해 다양한 특성화 교육을 질식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변호사시험은 본래 의미의 자격시험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상대평가제도를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법조인 배출 규모, 유사 법조의 조정 등 모든 관련 문제를 사전에 정리하지 않고 로스쿨을 도입한 것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겠으나, 예상되는 모든 사항을 완벽하게 조정한 후에만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면 제도 개혁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법조인 배출 규모는 로스쿨 인가 과정에서 법학교육위원회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입학정원을 확정하는 방법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저는 로스쿨 제도가 황폐화된 법과대학 교육을 시정하고, 폐쇄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법조를 개혁하며, 우리 사회의 법치와 인권보장의 수준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하기를 바랍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부정적인 현상의 원인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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