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4.11 21:21 수정 : 2012.04.12 01:52

해군기지는 정부가 짓는 것이니까
시공사는 아무 책임도 없을까?
굳이 기업의 윤리경영을 끌어오지
않아도 ‘국민기업’의 책임은 크다

김성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지난 3월29일, 삼성물산 본사 앞에서 동료에게 붉은 페인트를 뿌렸다. 동료는 구럼비 문양이 그려진 흰옷을 입었고 나는 삼성 로고를 달았다. 우리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구럼비 발파가 이 기업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자 했다. 어렵게 건물 앞으로 달려가 친구에게 페인트를 붓자마자 난 직원에 의해 넘어졌고 질질 끌려나와 던지듯 도로로 내보내졌다. 회사는 경호원들의 옷·시계 값, 바닥 청소 값을 포함해 2400만원의 손해를 봤다고 우리를 고발했다. 정말 2400만원의 돈이 아쉬워서였을까, 아니면 삼성에 대한 비판을 다시는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일까?

돈을 준다고 무슨 일이든 하지는 않는다. 일의 즐거움과 보람 등과 더불어 윤리적 측면도 고민한다. 기업은 어떨까? 해군기지는 정부·해군이 짓는 것이니까 시공사는 아무 책임도 없을까?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삼성의 간판을 보며 자랑스러워한다. 삼성의 기여를 따지며 경영상의 문제를 눈감아주기도 한다. 굳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경영을 끌어오지 않아도 한국 사회에서 ‘국민기업’ 삼성의 영향력과 책임은 크다.

강정마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삼성은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어떠한 반대에 직면해 있으며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기지 건설 공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구럼비로 향하는 사람들을 끌어내고, 화약 운반을 막는 사람들도 밀쳐내야 한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물론, 구럼비 바위와 붉은발말똥게를 비롯한 생물·무생물들을 없애는 구체적 작업이다. 공사를 수행하는 것은 포클레인이 아니라 운전하는 사람이고, 화약을 설치하고 버튼을 누르는 이도 삼성물산의 직원들이다. 이러한 일을 결정하고 지시하는 직원들도 있다. 만약 시켜서 하는 일에 책임이 없다면, 또 돈을 받고 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없다면 나치 시대의 수많은 일들의 경우 히틀러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인가.

‘일등기업’ 삼성은 해군기지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재벌 기업들 중 가장 큰 이익을 본다. 삼성탈레스와 테크윈 등의 군수산업 계열사들은 군대가 커지면 큰 이익을 보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와 삼성물산은 파격적인 업무협약을 맺고 각종 정보·정책들을 공유한다. 삼성은 이미 일개 기업을 넘어서 정부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며 이해관계로 묶여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구럼비 발파, 케이슨 투하 등 되돌릴 수 없는 공사들에 불법·폭력적인 일들을 저지르며 속도를 내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삼성물산의 의지다. 시공사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찬성하는 사람들마저도 제주해군기지가 지금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 100년 앞을 내다보는 일이라 한다. 무슨 이유로 이리도 서두르는가. 올해 두 번의 큰 선거가 있고 우리에게는 충분히 논의를 할 기회가 있다. 해군기지 문제는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사를 발주한 정부와 해군의 문제이며 공사를 진행하는 기업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식으로든 삼성과 관계 맺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문제다. 그렇기에 손익계산을 따지며 공사를 밀어붙이는 삼성물산의 본사 앞도 해군기지 건설의 ‘현장’인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묻고 싶었다. 구럼비 발파에 삼성물산은 책임이 없는가? 강정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아닌가? 잠시라도 발파를 멈췄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우리는 삼성물산 앞에서 스스로에게 페인트를 부었다. ‘또 하나의 가족’이 2400만원의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기보다는 더 큰 책임을 생각해주길 바란다. 이익 때문에 ‘가족’을 짓밟아서야 되겠는가.

4월5일, 지난 퍼포먼스에 이어 150여명의 시민들이 삼성물산에 항의하기 위해 본사 앞에서 인간띠잇기를 했다. 공사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모이는 사람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삼성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