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28 19:48
수정 : 2012.03.2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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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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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승무라는 과도한 책임감,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현장의 분위기가 젊은 가장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저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5호선 승무사무소 중 한 곳인 답십리승무관리소의 직원이자 노동조합의 승무지부장입니다. 저희는 지난 3월12일 소중한 동료를 잃었습니다. 고 이재민 기관사입니다. 그는 도시철도공사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성실한 노동자였습니다. 초등학생인 남매의 아버지이자 듬직한 남편이었습니다. 아무도 그가 44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지는 몰랐습니다.
이재민 기관사가 처음부터 운전업무를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술파트의 전자 업무를 하다가 승무 업무로 전직을 했고 지금으로부터 1년 전에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이재민 기관사는 자신이 공황장애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놀랐지만 병원도 다니고 사무소에 전직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사무소의 소장을 포함한 현장 관리자들 중 누구도 이재민 기관사의 절실한 요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이 나서 아픈 사람들에게 더이상 열차 운전을 강요하지 말라고 요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은 여유 인력이 거의 없어 기관사가 아프면 관리자들이 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사무소에서는 기관사들이 휴가는 물론 병가조차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급기야 일이 터진 날이 3월12일이었습니다. 이재민 기관사는 열차 업무를 종료하고 근무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어둡고 차가운 터널 안으로 들어갔고 동료가 운전하는 열차에 치여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그를 절망으로 내몰았는지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1인 승무라는 과도한 책임감,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현장의 분위기, 아픈 사람을 업무부적응이라고 분류하여 퇴직을 강요하는 회사의 정책이 젊은 가장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이재민 기관사가 사망한 직후, 회사는 공황장애가 아니라고 발뺌하였지만 담당주치의는 명백한 공황장애였지만 회사로부터의 불이익 때문에 진단명을 공황장애로 쓰지 않았을 뿐이라고 반박하였습니다.
더욱 슬픈 일은 아직도 소중한 동료를 편히 보내지 못하고 보름이 넘도록 차디찬 곳에 두고 있는 현실입니다. 소중한 자식이자 듬직한 남편이며 자상한 아버지를 억울하게 잃고도 장례조차 못 치르는 현실에 유족들의 마음은 오죽할까요. 유족들의 요구는 공사의 사죄와 이재민 기관사의 명예회복입니다. 누가 봐도 정당한 요구입니다. 그런데도 공사의 사장이란 분은 유족들과의 면담조차 거부하고 책임질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사과조차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제, 도시철도공사의 감독기관인 서울시가 나서야 합니다. 공사의 잘잘못을 따져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시민 안전을 위한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천만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안전에 공사와 서울시의 책임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공사 사장과 서울시장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재민 기관사가 편히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유족의 입장을 헤아려 주시길.
손근호 서울도시철도노조 답십리승무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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