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내신의 변별력 확보와 신뢰 회복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현행 국가중심 교과서제도를 교사중심 교과서제로 개선하고, 지식중심 교육과정을 토론과 논술, 체험과 봉사, 명상과 노작 등 다양한 내용으로 편성하여 평가하는 교사와 학교중심 교육과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안 논쟁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서울대 총장의 기존 입시안 고수 및 고교 평준화 해제 발언에 이어 교육부의 논술고사 후속 대책이 보도되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진지한 모색은 실종된 채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형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입시안 논쟁의 중심에 교육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입시안이 처음 발표될 당시 교육부는 내신 반영률과 지역 균형선발을 확대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문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커져가자 부랴부랴 비판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교육부와 사전에 상의하여” 만들었다는 서울대 쪽의 발표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입시안의 사회적 심각성마저 깨닫지 못한 교육부의 안일한 태도와 인식 수준에 명백한 문제가 있다. 입시정책을 바라보는 교육부의 인식 수준과 문제의식의 한계야말로 ‘미필적 고의’를 위장한 입시안 논쟁의 원초적 빌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갈팡질팡한 대응방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통합교과형 논술시험이 공교육 정상화를 가로막고 사교육만 살찌게 만든다는 비난이 일자, 교육부는 교육방송 논술강의를 1000편 이상 확대하여 논술 사교육 수요를 흡수할 것이라며 호기까지 드러냈다. 즉흥적인 대책이 아닌 오랜 연구와 검증과정을 거친 ‘고뇌에 찬 결단’이나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해마다 엄청난 예산을 쏟으며 교육방송 수능강의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사교육 쏠림 현상이 수그러들었는가? 교육방송 수능강의로 사교육비가 현저하게 줄었고 공교육 정상화에도 기여했는가 말이다. 교육방송 논술강의도 마찬가지다. 교육방송 강의로 입시문제를 해결하려는 교육부의 태도는 너무도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하다.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면피성 대책에만 관심을 쏟을 뿐 공교육 정상화에는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음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학별 논술고사 문제 유형을 사후에 심사해서 제재를 하겠다는 것도 그렇다. 대체 이미 치러진 대학별 시험 문제의 정당성 여부를 정부에서 심사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교육부는 이것도 부족한지 고교 교육과정에 논술을 정식교과로 채택하거나 논술교재를 개발 보급해 독서와 작문 과목에서 논술을 가르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논술고사 논쟁이 적합한 논술교재가 없어서, 정식교과가 아니라서 문제라는 것인가? 논술이 단순히 글쓰기의 절차적 요령이나 기술적 방법만을 가르치는 얄팍한 요술방망이가 아니라면, 교육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책을 풍부하게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과정들이 모든 교과에서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이것이 반드시 학생평가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논술은 그 성격상 국어교사의 몫도 아니고 특정 과목의 내실화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책읽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실효성을 의심받는 정책들만 나열하는 교육부의 조처는 도리어 서울대 입시안을 인정하고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정당화할 뿐이다.따라서 내신이 대입 전형의 결정적 자료로 활용되도록 내신의 변별력 확보와 신뢰 회복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교사별 평가제’와 ‘독서이력철’을 더욱 세밀하게 다듬어 조속히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행 국가중심 교과서제도를 교사중심 교과서제로 개선하고, 지식중심 교육과정을 토론과 논술, 체험과 봉사, 명상과 노작 등 다양한 내용으로 편성하여 평가하는 교사와 학교중심 교육과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학생들의 개성과 잠재성을 억누르고 학교의 특색 있는 교육을 가로막는 지식중심의 획일적인 교육과정으로는 내신 불신 현상도 논술고사 논쟁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내신이 입시전형에서 변별력을 가지지 못하고 끝없이 불신을 받는다면 어떤 방식의 논술고사라 할지라도 입시논쟁은 해마다 반복되는 한국사회의 유령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박명섭/전남 곡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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