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08 19:40
수정 : 2012.03.08 23:07
[왜냐면] 방송파업을 보는 서운함과 분노 / 문소윤
금요일 저녁, “<무한도전> 하나면 나 햄볶아(행복해)”라며 함박웃음을 짓던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꼬맹, 이번주도 ‘무도’ 결방인데 서운해서 어떡해?”라고 묻자 이 기특한 녀석이 “그러게. 노홍철이랑 하하 둘 중에 누가 이겼는지 궁금한데, 그래도 뭐 어쩌겠어. 필요하니까 그런 거겠지. 기다리면 언젠간 볼 수 있겠지 뭐. 그동안 재방송으로 나의 허전함을 달래겠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토요일 오전, “<무한도전> 또 결방이야? 대체 엠비시는 왜 파업한대?”라는 지인의 푸념에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돌아온 지인의 대답은 나를 적잖이 당황시켰다. “걔네 왜 그렇게 자주 파업한대? 짜증나게.” 그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10대인 우리 집 꼬맹이도 이해하고 기다려주겠다던 ‘엠비시 파업’을 두고, 그 누구보다도 현 정권의 언론탄압에 앞장서서 그들과 함께 분노해야 할 20대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김수현의 입꼬리’와의 기약 없는 만남이 많이 서운하기는 하다. 하지만 서운함과 분노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 생각한다. 서운함에는 파업중인 노조원들에 대한 걱정과 이해, 응원이 담겨 있지만 분노 속에는 몰이해와 현실 순응이 깃들어 있다. 분노를 느끼는 이들은 아마 중요한 팩트가 빠진, 소소한 사건사고로 뉴스가 도배되더라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인지하더라도 ‘그려려니’ 하고 넘겨왔을 것이다. 아마 이런 이들이 많다면 점점 ‘가카’의 언론탄압의 목적이 빛을 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집 ‘꼬맹’을 보면서 난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 엠비시 경영진은 “불법파업으로 인해 방송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를 품은 달>에 많은 사랑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아이러니한 광고를 게재했다. 사과드리지만 감사합니다. 영 어색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나서야 왜 그렇게 느꼈는지 깨달았다.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은 방송이 원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뉴스를 보도하지 못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법인카드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해서 죄송합니다’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엠비시는 되레 보복 감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논란이 일자 회사 쪽은 이전부터 하던 일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비굴한 변명은 이제 지겹다.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 경위와 관련해 수많은 변명을 열심히 들어줬으면 이젠 좀 획기적인 소설을 써줘야 귀라도 내어줄 것 아닌가. 아, 답답함이 밀려온다. 아직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지 않는 우리 집 ‘꼬맹’이조차 이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나는 정치적 발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같은 곳에 공개적으로 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활동 등에 조금 냉소적이다. 하지만 지금 방송파업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 우리 사회에 의문이 생겼다. 쇠고기 파동 때, 열심히 불을 밝혀주던 그 많던 목소리는 다 어디로 갔는지. 먹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그들의 힘찬 행보에 뒤따라줄 수 있는 목소리들은 어디로 가고 곳곳에 ‘분노’가 보이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문소윤 대학생·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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