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07 19:38
수정 : 2012.03.0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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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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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은 영웅적인 인물 한 명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우리 힘으로,
모두 함께 이루어냈음을 기억해야
올해로 쉰두살이신 우리 엄마에게는 정체 모를 이상한 피부병이 있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붉은 반점들이 온몸을 뒤덮어 가려움증으로 한 계절 내내 고생하신다. 음식 또한 예외가 아닌데, 가령 육류 같은 것은 입에도 못 대신다. 행여 붉은 반점이 도드라질까 싶어서다. 해서 엄마는 정기적으로 피부과를 내원하시며 요즘에는 갱년기가 더해 알레르기성 피부병은 더 심해지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엄마의 피부병을 보아왔는데 그저 엄마의 피부가 남들보다 조금 민감해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별 의미 없이 엄마에게 피부병의 원인에 대해 물었는데, 대답은 뜻밖이었다. 엄마의 피부병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라는 것. 말씀인즉, 결혼 전 일했던 공장에서 얻은 후유증이라고 했다.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엄마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했고, 엄마의 유일한 임무는 집안의 생활비를 위한 ‘돈 벌기’였단다. 어린 나이에 봉제공장에 들어간 엄마는 허리 하나 제대로 펴지 못하고, 창문 하나 달리지 않은 1평 남짓의 다락방에서 하루 12시간씩 먼지 구덩이 속에서 일했다고 했다.
그렇다. 엄마는 40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열악하고 부당한 노동현실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전태일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수많은 ‘노동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피부병은 우리 사회가 그토록 자랑하는 1970년대 산업화의 슬픈 단면이다.
전태일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했던 시대, 그 시대의 수장이 유령이 되어 떠돌고 있다.
얼마 전 서울 상암동에 ‘박정희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이를 두고 민주화를 탄압했던 독재자라는 평가와 근대화를 이룬 선구자라는 평가가 엇갈리듯 반응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이 지리멸렬한 논쟁들 속에서 1960~70년대의 노동자들은 설 자리가 없는 듯 보인다. ‘박정희 기념관’에 대한 나의 우려는 분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과 공적에 대한 왜곡·미화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후대에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말할 때 ‘박정희’만을 기억하게 되는 서글픔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그의 경제적 업적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사는 건데’라는. 그러나 나는 되묻고 싶다. ‘박정희’라는 영웅적 인물 ‘혼자서’ 이만큼이 가능한 것이었냐고. 박 전 대통령의 경제적 업적이 온전히 그의 것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시대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당했고, 그 탄압으로 경제성장을 일궈냈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이 그토록 희망했던 경제성장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성장이었는지, 그 성장의 혜택은 지금, 누가 받고 있는지 우리는 떠올릴 의무가 있다.
근대 산업화와 경제성장 앞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혹은 호명되지 못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 김아무개·이아무개 등의 노동자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웅적인 인물 한 명이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힘으로 모두 함께 이루어냈다는 것, 그래서 역사의 주체는 저 유능한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폐를 외치며 309일간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씨는 자신의 책에서 “거북선은 이순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국의 ‘근대 산업화’와 ‘경제성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반평생 피부병으로 병원을 다녀야만 했던 엄마의 고생 따위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한 시대를 힘겹게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외면하고 역사적 인물에만 골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주체적 역량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 아니지 않을까.
‘박정희 기념관’을 보는 나의 시선은 그래서 불편한가 보다.
김종현 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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