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08 19:53
수정 : 2012.02.08 20:06
디자인에도 참여 민주주의가 요구된다
도시 디자인 사업에서 시민 참여가
제도적·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운동가 박원순씨가 서울시장이 되면서 시정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박 시장은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구호 아래 시민 중심의 행정을 펼치겠다고 공언하였다. <한겨레> 2월3일치 인터뷰를 보면 특히 복지, 안전, 일자리 세 가지를 챙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와 더불어 챙겨야 할 과제에는 도시 디자인도 포함된다. 오세훈 전 시장은 디자인을 서울시의 중요 정책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나는 오 전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디자인을 오남용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엘리트적 관점에서 디자인을 마치 물건처럼 대상화하고 구경거리로 삼았다. 거기에 시민은 없었다. 시민은 수혜 대상이며 통치 대상일 뿐이었다.
‘디자인 서울’ 정책의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디자인계 일각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등장으로 기존의 디자인 정책이 폐기되어 파이를 상실할 것을 우려한다. 빗나간 디자인 정책에 대해 비판하기는커녕 전문가로서의 양식을 버리고 제 잇속만을 좇아 협력한 일부 디자인 전문가들의 행태는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정에 걸맞은 도시 디자인 철학의 정립이며 개혁이다. 한마디로 ‘시민 디자인’을 해야 한다. 시민이 중심이 되는 디자인이다. 시민을 디자인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시민이 디자인 주체가 되는 것은 시민이 자신들의 도시 환경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려면 디자인을 문화적이면서도 도시정치적인 측면에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아직 우리 시민들은 디자인 주체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라기보다는 당위에 가깝다. 오늘날 시민들은 사적 영역에서는 감각적인 현대 디자인의 소비자로 행위하지만 정작 도시와 같은 공공 영역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그다지 의식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디자인 서울’ 정책은 바로 그러한 현실을 악용한 것이고 더욱 심화시켰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제 도시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디자인은 정치가를 위한 것이 아닌 시민 모두의 삶의 질과 복지와 안전을 위한 아름다운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 디자인이 또 하나의 구호가 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시민 디자인을 담지할 주체적인 시민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크게 다음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시민이 디자인 주체로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시민 디자인 교육이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둘째는 시민을 디자인 주체로 보장하기 위한 참여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말하자면 디자인에도 참여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도시 디자인과 관련한 여러 사업에서 시민의 참여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제도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이 중심이 되는 디자인이란 이러한 교육과 참여를 통해서만 그 실질적인 의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디자인, 특히 도시 디자인의 대상은 시설물이 아니라 바로 시민 자신이다. 도시 디자인의 최종 목표는 자기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문화적 교양을 갖추고 능동적으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시민의 존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도시 디자인이란 곧 좋은 시민 만들기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디자인은 단지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바로 모든 도시 정책과 활동의 과정 그 자체임을 알게 된다. 박원순 시대의 서울 디자인 정책은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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