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25 19:39
수정 : 2012.01.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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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백혈병 피해자 유가족 황상기씨가 지난해 7월14일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정문에서 삼성전자 백혈병 직원에 대한 판결과 관련해 공단이 상급 법원에 항소한 데 대해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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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가 뽑는 ‘최악의 기업’에
삼성을 추천하는 이유는
무고한 죽음들에 대한 예의일 뿐
삼성 에스디아이(SDI) 울산공장 해고자 송수근의 어머니가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9일 영면에 드셨다. 송수근의 아내 박미경이 쓴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의 어느 페이지에서 보았던가…. 허리가 구부정한 늙은 어머니의 뒷모습이 기억났다. 또 한사람, 삼성전자 수원공장 해고자 박종태 대리의 트위터(@jongtaes) 대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팔순 노모만 해고 소식을 모른답니다. 불효자지요….” 신고된 집회를 방해받은 것도 모자라 경찰에게 폭행당한 삼성 해고자들 소식이 저녁 뉴스에 보도된 날이었다. 그날 온가족이 식겁했다고 박 대리는 얘기한다. 뉴스에 자기 얼굴이 나오는 걸, 어머니가 볼 뻔했다고.
삼성이 ‘무노조’ 한다는 말 어떻게 들리는가. 기업이 경쟁력이 있으려면, 노조 인정 않는 삼성 이건희가 잘하는 거라고 말한 적 없나. 노조가 기세등등한 현대나 기아보다 잘나가지 않느냐고 생각한 적은 없나. 그래, 어쩌면 정말 노조가 없기 때문에 삼성의 순이익은 늘 상종가를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직원들에게 나누어주는 연말 상여금이 웬만한 월급쟁이들 연봉만큼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부정하는 ‘무노조’라는 이름이 삼성의 정책으로 버젓이 자리하는데도 용인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헌법기관 어디도 죄를 묻지 않는 근거가 되나 보다. 그런데 ‘무노조’라는 깃발은 비단 경제 밥그릇 지키려는 안간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 밑에서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패륜과 인권침해를 알면 알수록 숨이 막힌다.
“몇해 전부터 공론화되기 전까지 전 제 몸에 나타난 증상이 그저 제 몸이 약하고 민감해서인 줄 알았습니다. … 그곳에서 일한 뒤부터 시작된 피부 질환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고 만성 피로를 달고 살고 있습니다. 클린룸 입실하고 다음날부터인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었고 그 후로는 얼굴에 심각한 염증성 트러블과 탈모가 나를 괴롭혔는데 그땐 전혀 의심하지 못했어요. 삼성을 너무 믿은, 아무것도 모르던 20살…. 무지했던 그 시절의 제가 원망스럽고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의 비보에 가슴이 아픕니다.”
며칠 전부터 반도체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카페에 올라와 있는 글이다. 여기에는 삼성에서 일하다가 질환을 앓고 있거나 질환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제보하는 글들이 넘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삼성은 이런 모든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올림의 첫 제보자인 황상기 어르신은 어린 딸을 백혈병으로 잃었다. 그는 딸의 죽음과 삼성의 근무환경이 무관하지 않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삼성에 노조만 있었어도, 우리 딸 유미가 그렇게 억울하게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삼성이 지키려는 ‘무노조’ 아래에는, 송수근과 박종태의 늙은 어머니들의 눈물과 딸을 잃은 아버지의 비통함이 있다.
그린피스가 1년에 한번 ‘퍼블릭 아이 어워드’(www.publiceye.ch/en/vote)를 통해 세계 최악의 기업을 뽑는다. 투표는 26일이 마감이다. 삼성이 1등으로 뽑혀, ‘다보스 포럼’에서 삼성의 진실을 알릴 기회가 꼭 오길 희망한다. 삼성의 악행이 세계인에게 폭로되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우리가 애써 모른 척했던 무고한 죽음들에 대한 예의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도리이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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