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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25 19:36 수정 : 2012.01.25 19:36

정용철 서강대 교수·체육시민연대 전문위원

독한 감독 김성근은 성공에 가장
가까운 마음으로 ‘순한 마음’을 꼽는다
닥치고 김성근처럼 정치들 하시길!

오해 마시라. 문성근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문성근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김성근(사진) 감독 이야기다. 지난해 8월17일 기자들에게 “올 시즌이 끝난 후 에스케이(SK)를 떠나겠다”는 말을 했다가 그 다음날 구단으로부터 경질 통보를 받아 물러난 야신 김성근 감독이 최근 ‘감독으로 말할 수 없었던 못다 한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책을 한권 냈다. 이름하여, <김성근이다>. 총선을 앞두고 하도 자기 이름을 넣은 자화자찬류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선거자금 축적용 도서상품으로 오인해 그냥 지나칠 뻔했다.

감독에서 전격 경질되고 석달쯤 지나, 한 광고에 출연해 내 막내아들 또래의 어린아이 옆에 앉아 쓸쓸한 표정으로 “아~ 야구 하고 싶다”라는 멘트를 날렸을 때 문득 가슴 한편이 저려왔다. 평생 야구밖에 몰랐고 야구 외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김성근 감독은 그 흔한 운전면허증 하나 없다. 근사한 신년음악회에 초대받아 가서 불편해하다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어떻게 팀의 하모니를 끌어내는가를 보면서 야구감독이 어떻게 선수들을 잘 이끌까에 대한 고민을 했단다. 이런 감독이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세번의 우승, 한번의 준우승 기록을 일구어냈던 팀으로부터 버림받은 뒤 써 내려간 자서전을 마주하면서 혹시 구단의 횡포에 대한 독설 혹은 최소한 섭섭함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면서 꼼꼼히 읽었다.

표지 맨 처음에 적혀 있는 좌우명 ‘일구이무’(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로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그저 담담하다. ‘야신’으로 추앙받는 최고의 감독으로서 차고 넘치는 성공담들을 늘어놓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실망스럽게도!) 온통 함께 고생했던 선수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으로 가득하다.

김성근 감독 밑에서 선수생활을 한다는 것. 야구선수들은 다 안다. 그가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지. 그런데 뜻밖에도 그런 독한 감독 김성근이 모든 일에서 성공에 가장 가까운 마음으로 ‘순한 마음’을 꼽는다. 이끄는 대로 따라오는 순한 마음. 새로운 것을 흡수할 수 있는 순함이 강해지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가 성공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야구를 사랑하는 순한 마음을 오랫동안 지켜왔기 때문일 것이다.

좀 생뚱맞지만, 총선과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이런 순한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을 대표하거나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에게 이런 순한 마음이 독한 마음보다 훨씬 더 절실할 것이다.

지난 12월12일 김성근 감독은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사령탑을 맡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이 야구선수로서 이미 막장을 경험한 선수들을 모아 다시 예의 그 독한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러나 지금껏 잠자고 있었던 재능들을 끊임없이 캐낼 것이다. 1등만 기억되는 우리나라에서 꼴찌들을 모아 반란을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김성근의 야구를 그저 악착같이 이기기만 하는 야구라고 생각해 왔다. 오해였다. 돌아보니 줄곧 기르는 야구를 해왔을 뿐이었다. 순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끈질기게, 그리고 전력을 다해서. 그래서, 김성근이다. 그래서 닥치고 김성근처럼 정치들 하시길!

정용철 서강대 교수·체육시민연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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