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20 16:10
수정 : 2012.01.20 19:32
나만의 방식으로 고름을 매거나
대님을 쳐도 뭐라 하는 사람 없는
즐거운 한복 입기가 필요하다
명절이 다가오면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들을 만나게 된다.
“한복 똑바로 입고 명절 기분 제대로 즐기자!” “장롱 속에 묵혀둔 한복, 이렇게 리폼하고 새해 맞이하자!” “예비 신랑, 신부 그리고 혼주가 알아야 할 2011·2012 한복 트렌드!”
이들 짧은 한 줄의 글 속에는 한복에 관한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우리가 평상시에 입는 옷들은 ‘개성’있게 입으면 그만이지 ‘똑바로 입었는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런데 ‘한복’은 다르다 ‘제대로, 똑바로’라는 수식어가 착용자에게 단서 조항처럼 따라다닌다. 왠지 ‘개성’보다는 ‘법도’를 좇아 입어야 명절 기분 살려주는 ‘스타일 종결자’가 된다는 경고처럼 보인다.
여기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한복은 잘못 입으면 안 되는 어려운 옷’이라는 편견을 안고 산다는 것이다. 한복을 잘못 입으면 명절 기분까지 망치니 차라리 입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듣는 이가 부담을 느끼는 충고는 ‘훈계’이고 평안을 느끼면 ‘조언’이라지 않는가. 한복은 심신을 자연스럽고 평안하게 해주기 위해 오랜 세월 선조들이 향유한 철학이 정제되어 전통복식으로 현대까지 남게 된 옷이다. 한복에 정답을 강요하는 듯한 ‘법도’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면 어떨까 한다.
‘장롱 속에 묵혀둔 한복’이라는 대목은 ‘제대로 입기 힘든 한복’의 사촌쯤 되는 ‘자주 입지 않는 한복’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묵혀둘 수 있는 한복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정제된 디자인, 정련된 소재, 세심한 철학적 사고를 담은 색들의 배합으로 무장한 전통복식을 가진 민족이 현대사회에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한복은 자신의 특별한 통과의례 때 소중한 의미를 전달해주는 값진 매개체라는 스토리도 가지고 산다. 한복을 묵혀두기에 아깝다는 정서 속에 경제적 문제만 개입된 재수선(리폼)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아줬으면 한다. 한복에 대한 관심과 안목을 가진 ‘문화적 소양을 지닌 한국인’이라면 한복을 기꺼이 새롭게 단장해줘야 하는 것이다.
‘예비 신랑, 신부 그리고 혼주가 알아야 할 한복 트렌드’라는 기사 제목에서 우리는 또다른 불편한 진실을 만나게 된다. 예비 신랑과 신부는 한복을 마주 대해본 적이 그리 많지 않다. 혼주 역시 한복을 입어본 세월이 희미해지고 있는 세대를 살고 있는 중이다. 이들이 트렌드에 관심이 있을까? 그리고 트렌드가 중요한 이슈가 될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한복에 대한 편안한 진실은 무엇일까? 명절이나 통과의례 같은 특별한 날,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찾는 순간에 ‘민족’과 ‘전통’에 대한 가치를 자극시켜 주는 매개체가 ‘한복’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나만의 방식으로 고름을 매거나 대님을 쳐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고, 짧은 단발머리라 앞이마로 흘러내리는 머리에 앙증맞고 귀여운 핀을 꽂아 정리를 해도 즐겁게 입을 수 있는 한복 입기가 필요하다. 자기 방식대로 입으면 좀 어떤가. 묵혀두었던 한복이지만 자기만의 역사가 있는 오래된 한복이면 또 어떤가. 트렌드를 몰라도 부담 없는 선택이었다는 흡족함이 있다면 좋지 않은가.
다가오는 설날엔 일단 ‘한복’을 입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필요한 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수현 원광디지털대 한국복식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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