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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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전문가·학부모·학생·시민이
참여하는 대책위원회 구성을
교육청과 총선 후보에게 요구합시다
사회 각 분야에서 곪을 대로 곪아 썩어 문드러진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각성된 시민들이 투표를 통해 빨간 신호를 보내자 다급해진 정치권은 4월 총선과 연말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입니다.
정치권 이상으로 고질적인 곳은 바로 교육 현장인 학교입니다. 일선 교사들과 교육관계자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희망이 안 보입니다. 입시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되는 학교에서 스트레스와 분노를 해소하지 못한 데서 폭력이 나옵니다.
그러나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것을 보면 그다지 고민의 흔적도 안 보이고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갈 뿐입니다. 예를 들면 ‘일진회는 공식적으로 없다’가 교육당국의 입장이었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다가 만천하에 아픈 상처가 드러나자 고작 내놓은 처방이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 강화, 스쿨폴리스, 학교폭력법 개정입니다. 여권에선 교권 강화를 얘기하고 교총에선 남자교사 증원 방안, 심지어는 무술유단자 교사를 양성하여 배치하자는 코미디도 속출합니다.
‘학교폭력 근절’이란 말 속에는 문제의 원인도 결과도 다 아이들에게 있다는 인식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0대 사망원인 중 자살이 세계 1위로 1년에 200여명의 청소년이 부모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친구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며 반대로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 탓인가요? 벼랑 끝에 몰린 아이들이 줄줄이 자살하는 상황이 와도 책임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학교폭력 문제는 단순한 폭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성세대인 어른들 세상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된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1%가 지배하는 폭력적인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서 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면 ‘왕따’시킵니다. 경쟁력 있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 유아기부터 낯선 영어로 시작하여 초등학생이 되면 학원으로 뺑뺑이 돌립니다. 놀 시간도 잠잘 시간도 부족합니다. 사회의 모든 어른들이 공모하여 ‘아동학대’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꿈 많은 학창시절은 옛말이 된 지 오래입니다. 대학입시에 지치고 주눅 들고 힘겹습니다. 성적이 떨어지면 자살을 생각합니다. 암덩어리가 온몸에 퍼져 ‘학교병‘이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끔찍한 생각이 들지 않나요? 교육을 진정 백년대계라고 생각한다면 각계각층 전문 분야 두루 포괄한 ‘국가비상대책위원회’라도 구성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구성은 이해 당사자이자 문제를 일으킨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나 교사는 빠지거나 자문 역할 정도로 참여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시민들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학교병’을 진단하고 치유책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중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제도나 시스템을 바꾸는 문제인 만큼 ‘사회적 합의’ 절차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1966년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주지사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하려고 소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신경학, 신경병리학, 독물학, 필적학, 사회학, 정신의학, 행정학 등 그야말로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하여 조사한 결과, 사건의 범인은 평생 제대로 놀아보지 못하고 공부에만 내몰려 극심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위 예에서 보듯 ‘학교병’ 치유를 위해 교육학은 물론, 심리, 사회, 인류, 경제, 행정, 문화, 체육, 생태 등등의 전문가와 학부모, 학생, 일반시민 등 광범위한 참여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산하에 특별조사단이나 특별전문위원회 등 필요한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현재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함께 한국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대책다운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 돌아가는 판세를 보니 대안학교나 대안교실 몇개 만들고 학교에 경찰 상주시키고 법률 강화시켜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시키고 상담교사 늘리다가 총선 이후 여론이 잠잠해지면 흐지부지될 게 뻔합니다. 몇년 전 학교 문제가 나왔을 때도 지금과 똑같았습니다. 어지간해서는 꿈쩍 않는 관료들이나 높은 양반 쳐다만 보고 있다가는 우리 아이들 두들겨 맞아 병들고 자살하고 감옥 가고 만신창이가 될 것입니다. 위기에 처한 학교를 살리려면 시민들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각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에 대책위원회 구성을 요구합시다.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들에게 교육과 관련된 구체적인 공약을 요구합시다. 교육단체나 교사단체는 지역공동체와 연계하여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고 실행에 필요한 예산을 지자체와 교과부에 요구합시다. 학교 문제를 계기로 학부모, 교사, 지역시민, 마을 어른들이 함께 모여 ‘공부 싫어! 콘서트’라도 한번 엽시다. 일진이, 이진이, 찌질이… 모든 아이들이 참여하여 만드는 행복·공감·평화콘서트가 되게 만듭시다. 교사와 학부모, 아이들이 함께 만들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은 칭찬하고 주춤거리는 학생들은 손잡고 나와 함께 놀아봅시다. 현재의 ‘학교병’은 놀지 못하고 쉬지 못해서 생긴 병입니다. 아이들은 자연의 본성에 가장 가깝습니다. 아이들에게 욕심을 빼고 자연스러운 놀이를 더하면 아이들은 친구와 나눌 줄 알 것이며 행복은 곱빼기가 될 것입니다. 놀이에 푹 빠져서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은 아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아이들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으로만 보면 도구화하기 십상입니다. 아이들은 아이 자체로서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야 합니다. 학교수업에서 재미와 흥미, 탐구욕이 솟구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이 바뀌고 주입식·기계식 교육이 아닌 21세기형 창의성·감성 교육이어야 합니다. 아이들과 무엇을 하며 어떻게 놀 것인가? 어른들 세상이 변하면 아이들이 바뀝니다. 우리 어른들을 닮은 아이들을 너무 탓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제 공부 좀 쉬고 같이 놀자꾸나! 진홍 신바람놀자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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