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른이 할 일은 분명하다
가증스럽고 추악한 내 안의
일진회부터 일망타진해야 한다
‘일진회’의 위세는 놀랍다. 악행은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이다. 위악은 경악스럽고 절망스럽다. 지켜보는 어른들은 무력감과 공포심으로 몸을 가눌 수가 없다.
사실 일진회와 같은 학생 조직폭력은 전혀 새삼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그 역사는 아마도 학교의 역사와도 같을 것이다. 각급 학교에 다녀본 대다수 어른들은 몸소 겪어 잘 알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척하지만 가식적인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어른들은 일진회를 알아도 모르는 척, 봐도 못 본 척, 우리 일이 아닌 남의 일로 수수방관했다. 아이들의 폭력과 악행을 철저히 방임했다. 귀찮아서, 무서워서 그랬다는 변명이다. 솔직히 그 시간에 자기와 제 가족의 안녕과 이익에 매진하며 살았다. 어른들의 철저한 이기주의 때문에 일진회와 같은 악의 씨앗이 보란 듯이 사회공동체의 질서와 가치를 파괴하는 공공의 적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어른들이야말로 일진회의 배후나 다름없다. 결국 아이들은 어른들이 살아가는 모습, 하는 행동을 그대로 보고 배웠을 것이다. 그 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 일그러진 일진회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가설과 추정을 증거할 만한 명백한 사례들은 주변에 넘친다.
일부 친일파 어른들은 대명천지에 ‘진실과 사실을 알고 있는 하늘도 무섭지 않다’고 대놓고 고함친다. 도리어 독립투사 같은 애국자들을 협박하고 공갈치는 적반하장을 연출하기도 한다. 후안무치하다.
일부 정치인 어른들은 신성한 국회의사당 안에서 무법과 불법의 권리를 가졌다며 억지를 부릴 때가 있다. 국민들은 국회를 난장판으로 사용하라고 국회의원들에게 만들어준 게 아니다. 사용자인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잘못 채용하고 관리하는 벌을 호되게 받고 있다.
일부 재벌 어른들은 과거의 편법 사업과 불법 경영을 눈감아주면 앞으로는 제대로 해보겠다고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애국하느라 그런 것 아니냐고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만일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국민경제가 불행해져도 책임질 수 없다며 대국민 으름장을 놓는다. 변칙 술수, 반칙 공격은 하늘을 찌른다.
일부 언론인 어른들은 근본적인 가치와 양심을 밥벌이의 책무와 맞바꾸기도 한다. 처자식이 일용할 양식을 틀어쥔 사주의 정략과 권모술수를 알아서 대필하고 곡필하느라 세상은 잘 모른다. 일부 법조인 어른들은 전관예우라는 그들만의 미풍양속의 전통을 철저히 계승하고 있다. 그들끼리의 인정사정이나 이해관계의 잣대가 법보다 위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피의자와 피고인, 그리고 피해자의 진실과 인권 위에 군림하며 치부와 권력을 즐기기도 한다. 일부 종교인 어른들은 미국과 체육관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경배한다. 일부 공무원 어른들은 국민의 종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들을 종처럼 부리기도 한다. 일부 노동자 어른들은 신성한 노동자로서의 근본과 초심을 내다 버리고 자본과 권력의 따뜻한 품으로 전향하기도 한다. 일부 교사나 교수 어른들은 제자에 대한 사랑이 지나칠 때가 있다. 언젠가 시험까지 대신 봐주는 바람에 다른 학부모들 눈에 피눈물이 나게 했다. 일진회의 배후나 원인은 이처럼 명백하다. 분명히 어른들이다. 이렇게 일진회를 양육하고 양산해낸 어른들은 이제 일진회가 무섭다. 일진회가 장악한 학교에 자식들을 보내야 하는 학부모 어른들의 심정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일진회한테 당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일진회가 된 아이들을 위해 우리 어른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해 보인다. 시간은 오래 걸리고 힘이 많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이상 미루어둘 수 없는 일이다. 방법은 명쾌하고 간단하다. 일진회의 배후인 우리 어른들의 가증스럽고 추악한 위선과 위악부터 걷어내는 일이다. 우선 내 안의 일진회부터 일망타진하러 나서는 일이다. 지금 당장.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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