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학교폭력, ‘피로’가 문제다 / 구복실 |
요 몇년 학교에서는 학급 전체가단합하여 무대에 오르는 합창대회, 학급 단합대회, 축제가 없어졌다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니다.’ 지난해 12월31일 <한겨레>에 실린 시론의 제목이다. 최근 학교폭력이 세간의 문제로 떠오르자 급기야 정부는 학교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처벌의 문제보다는 피로의 문제다. 교사도 학생도 모두 피로하다. 한해 수백건에 이르는 학교폭력은 처벌이 약해서가 아니라 학력 향상과 경쟁에 내몰린 교사와 학생이 모두 피로하고 지쳐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진 것이다.
요 몇년 학교에서는 학급 전체가 단합하여 무대에 오르는 합창대회, 학급끼리 삼겹살을 구워 먹고 서로 정을 나누는 학급 단합대회가 없어졌다.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여 1년 동안 연습한 각자의 기능을 경연하는 축제도 없어지거나 축소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사가 학생을 불러 근황을 묻고 학교생활의 문제는 없는지 묻는 친근한 대화도 찾아보기 어렵다. 교사는 학생이 문제가 있을 때 불러서 훈계하고 다짐을 받을 뿐이다.
이 모두의 변화 뒤에 전국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가 있다. 그리고 학교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성과급이 있다. 전국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부진한 학생을 골라 집중적으로 지도해 부진아를 없애겠다는 취지의 이 시험은 학교 간 비교평가, 심지어 교사 간 비교평가를 부르는 악질적인 학력경쟁 시스템을 낳았다. 비약적인 학력 향상을 위해 학교마다 정규수업 외에 방과후 수업을 개설하고 학업성취도 평가 과목인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5개 교과로 도배를 했다. 평가의 결과가 학교마다 교육청마다 비밀리에 통보되고 그 결과로 교사에게 압력을 넣는다. 하루 한 시간의 보충도 모자라 옆 학교는 8교시를 하고 앞 학교는 0교시를 한다는데 우리도 좀더 해야 하지 않느냐는 관리자의 발언은 은근하게 교사들의 피로를 조인다.
피로가 문제다. 수업에 찌든 교사가 여유를 가지고 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하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기는 쉽지 않다. 피로에 찌든 학생들은 빈번하게 친구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보다 부족해 보이는 학생들을 은근히 괴롭힌다. 교사는 가정 문제로 학교생활도 버거운 학생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따뜻하게 보듬어줄 여력이 없다. 피로한 학생들은 자신의 고통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에 남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상대의 아픔을 보고 자신의 고통을 덜어내려 한다.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모두 가슴이 아프다.
피해 학생이 그토록 어려운 상황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살펴보려 하지 않았던 교사의 학습된 피로가 무섭다. 학생에게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기 전에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던 교사의 잘못을 반성한다. 가해 학생이 그토록 오래 피해자를 괴롭히는 지경에 이르도록 한 번도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묻지 못한 교사의 학생에 대한 무관심을 한탄한다.
2월이면 다시 개학을 하고 새 학기를 맞는다. 폭력의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대안을 만들기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 교사와 학생들의 활력을 찾아주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가 코앞이라 성적 최우선을 묵과하더라도, 교육과학기술부가 앞장서서 초등학생과 중학생마저 의미 없는 시험의 경쟁으로 내모는 일제고사를 실시하고 모두의 피로를 극대화하는 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을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도 실패한 정책이라는 일제고사를 없애고 사랑으로 서로의 아픔을 보듬을 줄 아는 교사와 학생을 만드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임을 깨달아야 한다.
구복실 인천시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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