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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04 19:24 수정 : 2012.01.04 19:24

자녀를 잃은 부모로서 제안한다
‘폭력과의 전쟁’보다 악순환 끊을
세밀한 체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

대구의 중학생 자살 사건을 두고 ‘용서’에 대해 <한겨레>의 두 칼럼에서 언급했다. 하나는, 조한혜정 교수가 인용한 온라인 댓글로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아이의 아픔에 대한 대가를 섣불리 용서하지 말아 주세요. 용서라는 말, 입에 올리지 말아 주세요’라고 한 부분이고, 또 하나는 황선미 작가가 칼럼에서 ‘단죄만이 해결도 아니겠지만 자칫 면죄부가 될지도 모를 용서 또한 쉽게 거론하지 말았으면’이라 쓴 대목이다.

두 칼럼은 폭력에 물든 사회의 희생양이 된 아이들에 대해 어른으로서 사죄의 마음으로 쓴 글이라 공감이 간다. 그러나 용서에 대해 인용하거나 말한 위의 구절로 인해 유가족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은 물론 미성년자의 범죄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나는 자녀를 잃은 부모로서 사별자 모임을 하며 많은 부모들을 만났다. 우리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화두는 바로 ‘용서’다. 어떤 이유로 사별을 했든 아이를 지키지 못한 자신이나 가해자, 사회를 향해 느끼는 분노는 삶을 송두리째 삼킬 수 있을 만큼 파괴적이다. 그럼에도 용서에 대해 힘겹게 성찰하고 고뇌하는 이유는, 세상을 떠난 자녀 때문이다. 아이의 짧았던 삶에서 부모가 대신 이어갈 커다란 의미를 찾기 위해, 자신의 분노와 싸우며 무엇이 진정한 용서인지 고민하는 것이 사별자 모임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부모 심정이라 믿는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대구의 중학생 어머니가 용서에 대해 말했을 때 이는 결코 쉽게 거론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 어머니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해자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털기는 절대로 안 된다고. 원색적인 분노와 단죄는 유사한 폭력 사건에 대해 깊이있고 섬세하게 성찰할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음을, 부모 된 자의 직관으로 우려한 것이라 짐작된다.

세상을 떠난 아이가 병든 사회를 향해 던진 메시지의 의미를, 그 부모는 개인적 복수심을 넘어 치열하게 실현시켜가리라 믿는다. 학교폭력이 범죄임을 인지하지 못한 아이들과 사회의 잘못은 철저히 묻되, 인간성 자체에 대해서는 절대악으로 상정하여 단죄의 칼을 휘두르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이다.

학교폭력을 다루는 어른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부모의 태도로부터 사회가 배웠으면 한다. ‘폭력과의 전쟁 선포’ 같은 단기 처방보다 더 중요한 건, 교육현장을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세밀한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자녀를 잃은 부모가 평생에 걸쳐 애도의 과정을 겪어가는 것처럼, 사회 전체가 이 사건을 결코 잊지 말고 더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정은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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