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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02 19:41 수정 : 2012.01.02 19:41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권아무개군의 자살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는 또 하나의 불쌍한 피해 학생이 자살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다. 이번 비극을 통해서 교육현장에 몸담으려 공부하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 또한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친했던 친구들로부터 왕따 아닌 왕따를 당했다. 대구의 피해 학생들처럼 물리적인 피해를 당한 것은 없지만 정신적인 피해는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당시의 내 감정을 상기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여학생들은 신체적인 폭력이나 언어폭력을 당하지 않더라도, 친한 친구들의 외면만으로도 감수성 높은 청소년기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어른들의 시각과 잣대에서 보면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사이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우선으로 볼 수 있지만, 그들의 동료애와 우정을 다시 세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몇몇 어른들은 왕따 당할 만한 행동을 했으니 괴롭힘을 당했다는 무책임한 선입견을 가지곤 한다. 그들 안에서는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 가장 우선시되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우정을 돈독히 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로부터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과오를 따지는 것은 그 후의 일이다.

현직 교사들은 자신의 학교가 학력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내길 바라는 열정을 학생들에게 일부라도 떼어줘야 한다. 청소년기의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교실에서 깨우쳐주는 것이 교사의 임무다. 나 또한 초·중·고를 거치면서 그런 교훈을 전달받은 적이 없다. 이는 너무나도 비참한 현실이다.

학교폭력 사건이 문제시될 경우 사후 약방문 식의 대책만이 반복된다. 그저 학교폭력을 당했는지 여부만을 조사하는 설문지를 돌릴 뿐이지, 오히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가질 수 없는 우정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수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현직 교사들의 문제이고 바로 어른들의 문제이다.

학생들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한마디 위로도 받지 못하고 학원을 이리저리 다니며 지쳐서 집에 돌아오면 부모들과는 어색해서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대화 역시 단순히 친구들과 잘 지내냐는 안부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는 가장 친한 친구들의 이름조차도 모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학생들은 낙담할 수밖에 없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외면당하는 학생은 더욱더 힘들다. 해방구를 찾을 수 없다. 그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 비하할 뿐이다.

현직 교사들, 부모들의 문제로 그칠 것만은 아니다. 교육실습을 하면서 만났던 현직 교사분들 중에도 사랑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시선에서 보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앙집권적인 행정을 지방분권적으로 했다고 해서 교육의 획일적 통제가 지양되었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다. 지시·감독적인 장학에서 벗어나 민주적인 장학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의 예산지원을 눈치보며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해결을 부추기기보다는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학교폭력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피해 학생 치유를 위하여 학교뿐만 아니라 외부 시설을 통한 지원에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매스컴의 교육적인 기능을 강화하고, 사회적인 분위기 자체가 불건전한 도덕성을 배격하며 전인적인 인간성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현직 교사들과 부모, 정부의 노력이 쌍방향적으로 만나 삼박자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다. 학생들은 너무나도 어른들에게 불만이 쌓여 있다. 지금은 학생들을 꾸짖는 시간이기보다는 사죄하고 먼저 다가가야 하는 시간이다. 학생들에게 용서를 빌고 상처를 어루만져야 한다. 지금 한국의 교실에서 학생들은 너무나도 아프다.


이경희 이화여대 과학교육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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