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병민아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눈꺼풀이 무겁구나
자꾸만 내려앉는구나 다만
많은 사람들이 순정을 보내며
바람같이 감싸준 힘이었어
10여년의 수배도
철판 칠성판 위의 차가움도
견디며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1호실 남영동 건넌방에서
줄지어 선 옆방 어디쯤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비명소리였지 파란 불꽃으로 타올랐던
박영진 김세진 이재호
세상은 아직 변하지 않았구나
문신 같은 독한 후유증에 시달린
천상병 병곤 기억하느냐 병민아 겨울로 가는 낯선 길모퉁이에서
첫눈이 오길 그렇게 기다리다
문득 생각나는 그리움 같은
값지 못한 그 하얀 은혜들
그만 돌아서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또 목이 메는구나 그리고 미안하구나
하나둘씩 내려놓았던 짐
후배들과 인민들에게 떠맡기고 말았구나
반성, 더러움과 추악함
되돌아본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고통
마치 오래 내게서 머물다 간
고문의 흔적 같아
아랫도리가 다시 뜨거워지는구나
비명소리에 놀라고
비명소리에 깨던 날들
간만에 찾아온 교도소 휴일
고요한 아침 같구나
그때도 네 이름을 불러 보았지
조용히 타오르는 사람들을 불러 보았지 이제
모두가 추억이 되었구나
아니 추억마저 지워야 하는구나
칠성판을 지고 칠성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길마저도
못다 한 그 무엇도
가신 님 몸의 피밭에서 김승만/조선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가신 님 몸의 피밭에서 멍자국이 피어난다 포동한 볼의 고문술사가 웃으면서 근태 몸의 매듭을 끌렀다. 근태는 자신의 피밭에 몸을 뒹굴었다. 살려달라. 하느님 살려주세요 멍투성이 몸, 탈골된 관절 폐로 들어간 물… 손톱의 피엉김 하느님 살려주세요 고문술사는 큰 선물을 주었다. 뇌정맥혈전증, 파킨슨 병, 병, 병. 육체를 낱낱이 부수고, 마음을 괴롭히는 영원한 질병… 용서… 근태는 자칭 고문예술가를 용서한다 말했다. 차마차마… 복수를 말하지 못하고 그렇게… 목덜미로부터 등줄기를 타고 지릿한 통증이 쏟아진다. 위대한 자는 밀실의 조잡한 허접사리 영혼에게 유린당하고 그렇게 제 수명을 누리지 못했다. 고문술사도 따라가라. 고문술사를 사주한 군부독재권력의 하수인과 그 상전들도 근태의 ‘죽음의 집’ 안에 들어가라. 내세에는 근태 집의 개와 가축이 되어 평생 인간에 대한 너희의 살육과 고문의 범죄를 갚으라. 근태는 살해당했다. 이근안의 고문과 독재권력의 정상에 있던 자, 너희가 곧 근태 살해의 범인이다. 너희도 함께 가라. 근태 주검에 합장하라. 내세의 너희들은 근태 집의 종이 되어 채찍으로 맞고 뼈가 부서지는 그 고통을 매일매일 당해보라. 그것으로 사람이 사람을 무고하고 고문하고 형벌하는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근태만큼 고통을 당한 후에 깨달아 보라. 나는 텍스트로 가신 님 걸으신 그 피밭에, 멍자국에 내 눈물 한 방울도 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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