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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8 19:33 수정 : 2005.07.18 19:33

국가가 독점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경쟁을 부정해 시장경제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원리를 도입해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려는 것이다. 서울대는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의 다른 대학과 진정한 경쟁체제를 갖춘 뒤에 입시제도의 자율화를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무릇 대학교육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학생 및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와 대학 등 교육 공급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과열된 대학입시와 대학 수준의 질적 저하는 교육 공급자인 대학에 주된 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정책은 대학입시제도 등 교육 수요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수시로 변하는 입시제도에 갈팡질팡하면서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새벽까지 입시 공부를 하는 학생과 이에 안타까워하는 학부모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이들은 단지 잘못된 대학 시스템의 희생양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이 서울대가 대학교육 공급의 지배적 지위에서 자율과 경쟁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서울대는 백화점식으로 학과를 개설하고 있고, 일부 부분을 제외하고는 국내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최고 수준이 될 수 있어도 결코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수 없다. 거대한 공룡이 올림픽의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서울대는 구조조정을 통해 외국 명문대와 동등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즉, 정부는 연구 및 교육이 반드시 필요함에도 사립대 등에서 재원조달이 쉽지 않거나 인기가 없는 분야 또는 기초과학 분야 등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나머지 학문 분야는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학과의 설치 여부와 운영을 대학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최근 제기되고 있는 것과 같이 서울대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국립대를 서울대로 전환하여 서울대를 많이 설립하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서울대의 주요 학과를 지방 국립대로 특화하여 분산시키고 이를 집중 지원하고 육성하되, 나머지 학과의 설치와 운영 여부는 점차 지원을 축소하여 장기적으로 지방 국립대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물론 지방 국립대의 명칭은 ‘서울대’로 통일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 사립대의 지방 이전도 다른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문제만 해결되면 지방에서 사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냐는 것이 대부분 학부모들의 생각이다.

둘째, 서울대는 국립대학으로서 국가로부터 커다란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대학 운영과 의사결정에 있어 정부의 감독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대학과 자율적 경쟁이 아니라 정부의 특혜에 의해 경쟁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울대가 입시정책에 대하여 자율과 경쟁을 내세워 정부의 관여를 배제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다른 대학과 열린 경쟁과 연구 실적이 아니라 국가지원을 통하여 학과의 존속 및 운영이 보장된 것은 연구 의욕을 저하시킴으로써 서울대가 세계 100위권에 들지 못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교육시장 개방을 목전에 두고 있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언제까지 국가의 보호울타리 안에 안주할 것인가?

셋째, 서울대는 자율과 경쟁을 내세워 정부의 관여를 배제한 독자적 입시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대학이 입시제도를 경쟁원리 아래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문제는 서울대가 학력만능주의 풍조 아래 교육 공급의 지배자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 서울대가 교육 수요자인 학생 중에서 우수한 학생을 독점하고 교육 과열로 인한 교육비 상승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예컨대, 국가가 독점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경쟁을 부정하여 시장경제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려는 것이다. 서울대는 학문 및 행정의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의 다른 대학과 진정한 경쟁체제를 갖춘 뒤에야 입시제도의 자율화를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학벌 만능주의 사회에서 좋은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은 절실하며, 이는 빈부 차이 없이 누구에게나 똑같다. 넉넉한 사람은 주위의 눈총 없이 해외유학도 자유로이 보내고 영재는 국가가 집중 지원하고 육성하며, 중산층, 서민, 농민도 자기 고향에 살면서 가까운 곳에 있는 ‘서울대’를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는 물론 서울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며 대부분의 소위 사립 명문대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문제다.

마지막으로 서울대 총장과 교수평의원회에 묻고자 한다. 기득권을 버리고 학문과 교육에 대한 자율과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여 국내외의 우수한 대학과 제대로 한번 겨뤄볼 생각이 있는가?


이상윤/연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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