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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07 19:36 수정 : 2011.12.07 19:36

환경적·인류문화적·식량안보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농업,
적정 개방 규모를 국가 의제로 다뤄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도시민들은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겠지만, 가장 많은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에 농업도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약 20년간 농업 분야는 꾸준히 시장 개방을 받아들여왔고, 그 결과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고작 27%에 머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농업시장 개방은 크게 보아 국민소득의 증가로 인한 다양한 농산물의 수요 증대와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산물 무역자유화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또한 국내 농업생산 기반의 고비용 구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면서 식량자급률의 하락은 상당 부분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외부의 압력 때문에 계속되는 국내 농업의 축소와 점점 하락하는 식량자급률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켜야 할 최소 수준의 국내 농업생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적절한 농산물시장 개방을 결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첫째, 생산비에 근거한 비교우위에 맡겨두는 것이다. 이 경우 차별화된 국산 농산물 몇가지를 빼면 한국은 거의 모든 농산물을 수입하게 될 것이다. 둘째, 거의 모든 식량의 자급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고비용 구조 때문에 지극히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두 극단 사이의 어디엔가 적정한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이 목표를 설정함에 있어 농업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 생산 기능 외에 환경적·사회적·인류문화적·교육적·식량안보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러한 기능들은 그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나타내는 가격이 부재한 탓에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홀히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이미 우루과이와 도하 라운드를 통해서 밀도있게 논의되었고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효율성과 성장의 척도만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공공정책을 통한 국가의 시장개입과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필수적이다. 많은 구미의 학자들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범세계적 수준에서 농업정책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으로서 시장지향적 세계화 추세와 경쟁 혹은 보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흐름이 맹위를 떨치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의 급속한 농산물 시장 개방에 농업강대국들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시기다. 그러한 시기에 적정 농산물 수입 규모를 인위적으로 국가가 결정해서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 다자간 협상의 주변국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10년을 넘게 끌어온 도하라운드가 브릭스(BRICs)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능동적인 협상 참여와 전통적인 협상 주체인 선진국들의 농업보조금 감축 거부 때문에 실패한 지금, 각국의 사정에 맞는 농업개발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제까지 공산품 수출 위주의 경제성장을 해온 한국은 외국에 보호무역을 한다는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 농업 부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그런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도하라운드의 농산물 무역 자유화 노력 실패는 농업은 다른 산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그래서 자유무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다자간 협상이 체결되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지만,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양자간 협상에서는 농산물은 제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적정 수준의 농업을 지키기 위한 의지다. 농업 개방을 가속화할 수 있는 농업강대국들과의 양자간 자유무역협정 논의를 더 진행하기 전에 국가안보적·사회적·환경적·인류문화적 가치를 고려했을 때의 적정 농업 규모가 국가적 의제로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최우선으로 원하는 바가 농업을 더 많이 개방해서 농산물을 가능한 한 싼값에 사는 것이거나 혹은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면 모르지만, 외부의 압력 때문에 농업시장 개방을 확대하는 것은 근시안적일 뿐만 아니라 주권국가로서의 권리 행사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제 농업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서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하는 나라만이 소유할 수 있는 특별한 산업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대외적으로는 시장지향적 농업정책 개혁을 주장하고 있지만, 대공황 이후 줄기차게 대규모의 농업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제외하면 시장에만 의존하는 농업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문완기 미국 서던일리노이대학 농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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