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논술이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길 / 이상춘 |
최택진씨는 12월1일치 왜냐면 ‘한국 논술과 프랑스 논술 비교’라는 글에서 논술강사 노릇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우리나라 대입 논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동업자로서 공감하는 바가 많다. 사교육에 종사하면서 논술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쉽지 않다.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사교육에 몸담고 있다는 자격지심이 몸을 사리게 만드는 탓이다. 최택진씨의 발언이 공교육과 사교육을 가리지 말고 논술 교육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지는 실마리가 되길 빈다.
현행 대입 논술은 제시문 속에, 또는 제시문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출제 의도를 발견해서 논리적으로 표현할 것을 요구하는 시험이다. 출제 의도를 발견하기 위해선 제시문들을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대다수 고등학생들이 대입 논술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분석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일부 대학에선 대다수 고등학생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제시문들을 출제하여 변별력을 확보한다. 그런 까닭에 제시문 이해 여부가 당락을 결정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또 제시문이 어렵지 않더라도 출제 의도를 찾기가 만만하지 않다. 출제자가 제시문들을 선별해서 배치한 것에는 그 나름의 꿍꿍이가 숨겨져 있다. 출제자는 자신이 원하는 답의 방향을 확정하고, 그것을 유도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로 제시문들을 선별해서 배치한다. 그런 다음 수험생들로 하여금 제시문들을 연결시켜 자신이 원하는 답의 방향을 추론해 낼 것을 요구한다. 대입 논술은 일종의 퍼즐 게임이다. 제시문은 퍼즐 조각이다. 일부 퍼즐 조각을 던져 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빈 곳을 메워서 완성된 그림을 그려낼 것을 요구한다. 주어진 퍼즐 조각을 제자리에 배열했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빈 곳을 메워 완성된 그림을 그려내려면 사고력이 필요하다.
제시문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도, 또 출제 의도를 추론해 내기 위해서도 독서 경험을 통한 사고력 함양이 우선돼야 한다. 최택진씨는 책 읽기를 통한 사고력·분석력·비판력 확장이 우선이라고 했다. 맞는 얘기다. 논술을 아주 잘하는 학생들의 공통된 특징은 책을 꾸준히 읽어 왔다는 것이다.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좋은 칼럼을 많이 읽은 것도 또다른 공통된 특징이다. 풍부한 독서 경험과 현실에 대한 관심을 통해 세상과 삶에 대한 자기 나름의 관점을 모색해 나가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고력을 습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공교육에서 독서 토론, 신문활용교육(NIE)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교육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한 것은 공교육이 정상적이지 못한 까닭이다.
여기까지는 최택진씨의 주장에 공감한다. 그런데 최택진씨는 제시문과 정답이 없는 프랑스 논술을 바람직한 모형으로 제시한다. 우리나라 논술은 제시문과 정답이 있으므로 사고력 확장에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선 동의하기 어렵다. 첫째, 우리나라 논술과 프랑스 논술을 평면적으로 비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논술과 프랑스 논술의 차이는 교육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사회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육제도 전반에 걸친 성찰과 개선책 없이 논술 차이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둘째, 우리나라 논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논술은 거칠게 말해 제시문 분석력과 통합적 사고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 이것은 채점의 공정성과 편의성을 높이고, 고교 교과과정과의 간격을 좁혀 왔다.
나는 우리나라 대입 논술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선 최택진씨와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논술이 뿌리내리기 위해선 고등학교와 대학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고등학교에선 독서 토론, 신문활용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와 함께 대학에선 고교 교과과정에 더 밀착된 논술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 올해부터 경북대에서 논술을 폐지하고 ‘진학적성검사’(AAT)를 실시했다. 제시문에 대한 이해, 비판적·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한다는 점에선 기존의 논술과 똑같다. 다만 문항 수를 늘리는 대신 답안의 분량을 200자 이내로 줄인 서술형 시험이라는 점이 다르다. 대학별 고사라는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대입 논술은 대학마다 차별화된 다양성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이 공교육의 정상화와 질적인 향상에 기여한다는 말이 빈말로 그치지 않으려면 교육 현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경북대의 ‘진학적성검사’ 실시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본다.
이상춘 논술 강사·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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