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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5 19:23 수정 : 2011.11.25 19:23

박정현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연구교수

지난 24일에는 죽음에 관한 충격적인 뉴스가 두 건 있었다.

첫번째 충격적인 뉴스는 바로 티베트 여승의 분신이었다. 사진을 본 순간 어떻게 저런 뜨거운 불에 스스로의 몸을 온전히 불사를 수 있을까란 생각에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도 그렇게 극한의 고통을 넘을 수 있는 수행자로서 스님의 경지와, 스님을 저러한 상황에 내몬 중국과 티베트 사이의 정치적 상황에 안타까움과 함께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두번째 충격적인 뉴스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 고3 수험생이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했다는 뉴스였다. 더욱이 그 학생은 8개월 전에 어머니를 살해하고도 사체를 방에 방치하고 버젓이 학교를 다녔고 얼마 전 수능시험도 치렀다고 한다. 가히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두 죽음과 관련된 뉴스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단순히 충격적인 뉴스로만 보아 넘기고 애써 기억의 저편으로 던져 잊어버릴 것인가? 이 사건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무거운 화두는 과연 무엇인가?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불합리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티베트인들의 정서가 한 여승의 절제되었지만 강력한 항거의 모습으로 표출됐다. 이를 통해 인간은 원초적으로 억압되지 않는 자유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자유는 방종이 아닌 책임 있는 자유임은 당연하다.

고3 수험생은 친모 살해의 죗값으로 구속되었겠지만 그 학생 또한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로 대표되는 그릇된 교육체제와 일그러진 교육문화의 최대 피해자임도 사실이다. 그 학생도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와 어머니의 지나친 시험성적 요구와 같은 정신적인 억압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범행 뒤에도 이성을 찾지 못하고 입시라는 올가미에 걸려 생활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입시교육과 학벌주의라는 잘못된 교육체제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일그러진 정신문화가 그만큼 견고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 학생도 정신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느끼고 싶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배우고 있다. 요즈음엔 유아기 어린이집과 성인 이후에도 배울 수 있는 평생교육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가히 평생교육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평생의 시간을 투자해 배우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한번쯤은 던져 보았음 직한 질문이리라.

훌륭한 과학자나 의사, 교사 등이 되고 싶어서인가? 삶의 흥미를 더하기 위함인가? 학문적 깨달음을 얻기 위함인가?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교육을 통한 선택의 문제이지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두 죽음과 관련한 사건이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는 바 우리는 최소한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고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고 사람답게 살고자 희망한다. 그래서 배우는 것이 아닐까? 그러하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체제와 그 배경이 되는 잘못된 교육문화에 대해 일선 교육자들은 물론 교육 당사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저 두 사건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왜 배우는지와 왜 사는지에 대하여 새삼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진지하고 책임 있는 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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