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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3 19:39 수정 : 2011.11.23 19:39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공혜빈 경기도 삼괴고 2학년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고등학생이 어디 있을까?
사회적 분위기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옛날에 어느 왕국이 있었다. 작은 도시만한 나라였지만 착실히 건강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 마을에는 우물이 두개 있었는데, 하나는 귀족들이 사는 성 안에 있었고 또 하나는 평민들이 먹는 것으로 성 밖에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성 밖의 우물에 독이 퍼졌다. 정신을 나가게 하는 독이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 물을 마시고 미쳐버렸다. 두려움에 떨며 어쩔 줄 모르던 귀족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장시간의 회의 끝에 그들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도 우물물을 마시자.’

수능이 끝났다. 그리고 나는 선배들의 땀과 눈물이 어린 배턴을 물려받았다. 나는 이제 고3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수능날 특히나 괴로웠다. 고3에 대한 압박감보다는 우물물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었다.

사실 지난 수능날 수험생들이 모두 시험을 본 것은 아니다. 일부의 학생들이 ‘투명 가방끈’을 메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와 입시제도의 모순을 해결하는 일은 스스로 그를 거부하는 것뿐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 우리나라의 입시제도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고등학생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를 따라 우물물을 마시고 있을 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들의 ‘투명 가방끈’ 운동을 지지하는 청소년 인권단체의 회원이다. 몇번 행사나 모임에도 참석했다. 그 단체의 모임에서 우물물을 거부한 청소년들을 만날 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처박혀 있는 정의라는 불씨가 살아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택을 종용받는 것이다. 우물물을 마셔 그 불씨를 꺼버릴 것인지, 우물물을 거부하고 불씨를 토해낼 것인지 말이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나는 고3이 되고야 말았고, 우물물이란 확실히 거부하지 않으면 스며드는 것이므로 나는 이미 꽤 많은 양의 우물물을 마셨다. 요즘에는 아, 이런 게 어른이 되는 거구나, 철이 든다는 거구나 하고 느끼기도 한다. 순응이라는 이름의 우물물이 꼭 입시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너무나 부끄럽다. 사실 내 꿈은 그 불씨를 토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우물물의 독은 그것을 미루고 있다. ‘대학 간 다음에, 기자로 취직한 다음에 하자’고 나를 유혹한다. 이 글을 보게 될 어른들이 내게 답해주었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이 비정상적인 길에서 내가 우물물을 마셔야 할지, 정말로 대학에 가면 만능 해독제가 있는지. 이런 것이 철없는 소리라면 철이 든다는 것은 우물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건지. 적어도 ‘고3이 공부는 안 하고!’ 하는 소리만 안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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