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23 19:38
수정 : 2011.11.23 19:38
이재우 인하대 자연과학대학 교수
왜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을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게 하는
입시제도를 개선하지 못하는 걸까요
저는 올해 고3 딸아이를 두고 있는 학부형입니다. 이번 대입전형을 딸아이와 같이 치르면서 우리나라 교육과 입시에 대해 학부형의 느낌을 적어봅니다. 고3 학부형은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끼는 세대입니다. 그렇지만 교육 현장에서 학부형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아 있고, 모든 교육정책과 제도는 대학과 교육 관료에 의해서 수립·시행되고 있습니다. 제도는 해마다 바뀌고, 제도의 변화를 빨리 따라가는 학원만이 배를 불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입시전형은 수시전형의 입학사정관 전형과 일반전형(주로 논술전형), 정시전형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제도는 특이한 경력이나 능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입니다. 저는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특이한 능력이나 경력이 있는 학생이 선발되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입학사정관 전형의 95% 이상은 입학사정관 전형의 원래 취지에는 맞지 않는 학생을 선발합니다. 그야말로 스펙이 좋고 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을 선발합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은 3년 동안 스펙을 쌓고, 내신과 수능을 위해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또 새벽 2~3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합니다. 대학에서 스펙을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외국어능력 우수자 전형의 경우 토플·토익·텝스 등에서 고득점을 얻어야 합니다. 대학교 졸업할 때 성취해야 할 능력을 고등학교 졸업할 때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좋은 스펙을 갖추는 데 부모의 능력과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대학입시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논술전형을 살펴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ㄱ대학의 인문계 논술시험 내용은 최근에 활발히 연구하고 있는 게임이론,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사회학과나 경제학과의 대학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논술을 지도할 교사가 우리나라 고등학교에 몇 명이나 있을까요. 이렇다 보니 서울 강남의 논술학원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이 강사로 다수 포진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학 입학시험인지 대학원 자격시험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강남이나 목동의 학원에서 논술 준비를 한 학생은 논술전형에 유리하고 지방 학생들은 논술전형이 그림의 떡이 되는 것입니다. 논술전형의 경우 서울과 지방 사이, 강남과 비강남 사이에 엄청난 교육의 불평등이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논술학원에 다니지 않고 논술전형으로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아집니다. 공교육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사교육 시장에 전가하고, 더욱 사교육 시장이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대학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전형부터 대학이 가져야 하는 근본적인 양심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수시전형의 경우 보통 한 학생이 10곳 정도 지원합니다. 보통 한 번 지원에 10만원 정도의 전형료가 들기 때문에 전형료만 100만원 정도 들게 됩니다. 또한 수시전형이 대부분 수능 결과가 나오기 전에 원서를 받기 때문에 학생들은 보험 드는 셈 치고 많은 대학에 원서를 내게 되고, 또 시험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서울의 대학들은 경쟁률이 100 대 1이 넘는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한 지방 학부형은 한 대학의 논술전형을 보는 데 50만원이 들었다고 푸념합니다. 시험 전날 서울의 학교 근처 모텔을 얻고,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옵니다. 보통 학생과 학부형이 같이 오니 숙박비와 케이티엑스 비용만 30만원이 넘습니다. 거기에다 전형료와 식비, 교통비를 생각하면 50만원이 훌쩍 넘는 것이죠. 서울 거주 학생은 지하철 요금만 있으면 되는 데 비해 지방 학생은 엄청난 고생과 금전적 부담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논술전형을 통과하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 공부에 열의가 없고 창의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정시전형은 수능을 100% 반영하거나 수능 점수의 비중을 크게 두는 학교가 많고, 모집을 가·나·다군으로 나누어 하고 각 군당 한 학교만 지원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그나마 낮아집니다. 그러나 이번 수능은 쉽게 출제되었고 변별력이 없다 보니 학생들의 수준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올해 외국어(영어)의 경우 가채점 결과 한 문제 틀린 학생은 1등급이고, 두 문제 틀린 학생은 2등급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문제를 풀다 보면 아무리 우수한 학생이라도 실수로 한두 문제는 틀리게 됩니다. 1등급을 얻기 위해서는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것이죠. 이것이 과연 교육적일까요?
지금 학부형은 ‘7080세대’가 많습니다. 그때는 학력고사 하나로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죠. 많은 학부형들이 그때가 더 좋았다고, 지금 같은 입시제도라면 나는 대학에 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이러한 문제점에 많은 학부형이 동의하고 있는데도 왜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을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게 하는 입시제도를 개선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유권자인 학부모의 참여가 그 해답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웃으면서 학교에 다니고 웃으면서 대학에 들어가는 그런 날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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