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빛과 그림자 멕시코시티 외곽의 신흥 부촌인 산타페(왼쪽)와 빈민 주거지역인 텍스코코. 나프타 발효 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 현상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멕시코시티/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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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혹자의 표현대로 미국과 너무 가까워 슬픈 나라, 멕시코 이야기다. 멕시코의 한 회사가 산루이스포토시주로부터 허가를 받아 과달카사르시라는 조그만 마을에 폐기물을 임시로 쌓아 두었다가 다른 곳으로 반출하는 ‘하치장’ 사업을 하고 있었다. 하치장 영업만으로 폐기물이 지하수로 스며들었고, 과달카사르시의 암환자는 급증했다. 그럼에도 그 회사는 하치장의 땅을 파서 유독성 폐기물 ‘매립장’으로 만들기로 하고, 필요한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시와 주 정부가 그 허가를 거부했다. 그러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이 맺어졌고, 그 효력이 발생하기 몇달 전 미국에서 쓰레기 처리를 전문으로 하던 한 ‘미국 회사’가 그 멕시코 회사를 사들였다. 물론 해당 시와 주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미국 회사’는 중앙정부의 언질만 믿고 시 정부의 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완료했다. 그러나 시 정부는 폐기물 매립장 허가를 거부했다. 멕시코법에 따르면 폐기물 매립장 허가에 대한 권한은 시 정부에도 있으므로, ‘미국 회사’가 멕시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승소할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자 ‘미국 회사’는 나프타에 따라 멕시코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하였고, 이에 재판부는 “본 재판부가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보호 조처와 같은 동기라든가 의도 등은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고려할 문제는 오로지 투자에 어떤 영향이 있느냐일 뿐이다. 폐기물 매립장을 건설·운영할 수 있다는 ‘미국 회사’의 기대에 반하여 시 정부가 건축허가를 내리지 않음으로 인해 ‘미국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그러므로 멕시코는 ‘미국 회사’에 1668만달러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판정을 내렸다. 결국 이 다툼은 멕시코가 그 ‘미국 회사’에 1560만달러를 배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과달카사르시는 암 외에도 원인 불명의 불치병과 잇단 기형아 출산, 초·중등 학생의 안경 사용 급증 등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이것이 멕시코를 상대로 ‘미국 회사’ 메탈클래드가 제기한 투자자-국가 소송의 개요다. 멕시코는 1993년 일찍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는데, 체결하자마자 지방자치단체의 적법한 처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투자자-국가 소송의 ‘납득하기 어려운 매서움’을 몸소 체험하고 말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투자자-국가 소송은 국가의 행위가 보상을 요하는 ‘수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우리 법원이 아닌 중재판정부가 판단한다는 것이고, 그 판단의 기준 역시 우리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그밖에 적용가능한 국제법뿐이란 것이다. 그러나 헌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위에 대한 사법심사로 법원이 헌법과 법률에 기초하여 판단하고 통제하는 것 말고는 달리 예정한 바 없다. 그러므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그 자체로 위헌적인 것이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정한 ‘투자’의 개념은 우리 법의 재산권의 범위보다 넓어서, 면허·허가·인가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인허가를 적법하게 거부하거나 또는 추후의 사정변경 등의 사유로 취소하는 경우도 협정문상의 ‘수용’에 해당될 수 있고, 미국 투자자는 이러한 경우까지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멕시코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에 대하여 미국 투자자나 내국인이 법원에 제소할 경우 적법한 처분이라는 이유로 패소할 사안임에도, 미국 투자자가 같은 사안을 가지고 투자자-국가 소송을 제기하면 그를 통해 보상을 받아갈 수 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시 재정비나 도시개발 관련 지구지정 등 관련 인가 처분, 인가변경 처분 등이 합헌적이고 적법한데도 이로 인해 정부가 보상을 해야 하는 사태는 최소한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시개발과 관련한 인허가 처분을 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한 협의를 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점에서 서울시가 정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관련하여 협의를 요구한 것은 적절하고도 필요한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발행하는 <대한변협신문>이 11월7일치 1면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문제점을 다루고 이를 비판하는 사설도 게재하였는데,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그 사설에 따르면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마저도 2007년 당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판결이 났음에도 미국에서 뒤집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며 ‘어떻게 보면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초래하게 되는 사태의 핵심이다. 멕시코가 우리의 미래가 되어선 안 되듯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통한 실질적인 개헌이나 납득하기 어려운 보상도 우리의 미래가 되어선 안 된다. 서울시의 투자자-국가 소송제 관련 조항 재검토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한겨레>에서 시민사회 토론 공간으로 제공한 지면입니다한국 사회 구성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기본을 갖추고 인신공격을 멀리하며 합리적인 논거를 담은 제의, 주장, 비판, 반론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글과 함께 이름과 직함, 연락번호, 주소를 적어 보내주십시오. 청탁 글이 아니라 자발적 참여로 짜이므로 원고료는 드리지 않습니다. 전자우편 opinion@hani.co.kr, debate@hani.co.kr, 팩스 (02)71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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