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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5 20:21 수정 : 2005.07.15 20:22

학벌사회를 공정한 경쟁의 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서울대 학부의 한시적 폐지가 필수적이다. 서울대를 대학원 중심의 전문 학문기관으로 재편하고 서울대 학부는 여타 대학교 학생과 시민들에게 열어둬야 한다.

서울대의 2008 학년도 입시안에 대해 정치권과 교육단체들은 ‘통합형 논술’이 사실상 본고사 부활을 의미하며 결국 과열된 사교육 시장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지난 8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특히, 장호완 교수협의회장은 “지금처럼 대학의 자율성이 침해된 것은 군사정권 이래 처음”이라며, “정부가 대학 자율에 대한 개념을 인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성명은 “일개 대학교의 입시안을 두고 정책 당국과 정치권이 모두 나서는 상황은 교육정책의 실패와 학교교육 붕괴의 책임을 호도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일단, ‘서울대 권력=국가권력’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왜곡된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서울대를 ‘일개 대학’으로 자임하려는 교수협의회에 경의를 표한다. 그간 서울대는 매년 대학에 지원된 정부 연구비, 약 1조1천1백15억원 중 1752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전국대학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7%, 지방 국립대의 약 6배에 이르는 편중지원을 받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국립대 설치령’ 외에 법안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별도의 ‘서울대 설치령’에 의해 운영되어 왔고, 역대 장차관 62.3%, 입법부 36.1%, 기업 대표 43.6%, 언론간부 37%, 대학교수 27.2%라는 경이적인 권력독점을 행사하고 있다. 이제 ‘일개 대학’이 되려는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이런 기괴한 기득권에 대한 자성을 냉철히 해주길 바란다.

교수협은 왜 서울대의 입시안에 대해 온 사회세력이 나서서 간섭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말 순진무구해서 모르나, 아니면 너무 영리해서 모른 체하나? 한국사회는 대학서열이 몇십 년 동안 고정되어 있다. 이런 고정된 대학 서열화 체제 안에서 서울대는 대학교의 정점에 서 있고, 서울대의 입시전형 방향은 도미노처럼 다른 대학교의 입시정책과 입시위주의 공교육 전영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다들 아는 내용이다. 그러니 서울대 입시안에 대해 모든 사회세력이 나서는 이유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서울대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말라고 한다. 부탁하건대, 학생을 선발하는 자율성이 곧 ‘대학의 자율성’인 양 등치시키지 말라. ‘대학의 자율성’이 기껏 그런 협소한 의미는 아니지 않은가. 단지 취업준비 장소, 고시낭인과 편입 준비생의 집합소로 변질된 대학사회와 조야한 경제적 논리에 포섭되고 있는 대학의 현상황에 맞서 자유로운 사상, 대학내 민주주의 확보,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순수학문의 두터운 영역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학 자율성’의 본질일 것이다. 기껏 점수 높은 학생들을 더 많이 뽑으려는 데 대학의 자율권을 운운하는 것은 그 동안의 특혜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서울대가 자신의 독점적 권위를 입학생들의 서열에 기대 유지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통합형 논술은 즉각 철회되어야 하며, 당정은 ‘3불 정책’을 법제화해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해결 방안은 현 공교육 문제를 더 악화시키지 않게 할 뿐 개혁할 수는 없다. 여전히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서열 체제’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결국, 고정된 대학서열로 생긴 학벌사회를 공정한 경쟁의 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서울대 학부의 한시적 폐지가 필수적이다. 서울대를 대학원 중심의 전문 학문기관으로 재편하고 서울대 학부는 여타 대학교 학생과 시민들에게 열어둬야 한다. 십대 때의 입학성적으로 얻게 되는 서울대 간판이 더는 권력독점의 도구로 되지 않을 때까지. 그와 동시에 국립대 졸업생들에게 단일한 졸업장을 주고 국립대를 집중 지원하여 소위 명문대의 위계를 허물어뜨리고 학과 사이의 학문적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이박동건/학벌없는사회 푸른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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