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재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사무총장
WTO 가입·유통개방 때와 똑같이
이제는 FTA 때문에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나
현재 중소상공인들은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전 가족이 함께 일하여도, 수지가 맞지 않아 계속 손실을 감수하면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대기업은 불쌍한 중소상공인들의 최소한의 이익까지도 차지하려고 온갖 횡포를 다 부리고 있다. 심지어 대기업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업체를 만들어 볼펜·복사용지·면장갑·볼트·공구까지 판매하겠다고 나서는 실정이며, 떡볶이·순대·샌드위치업에까지 뛰어들어 소상공인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정부·여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밀어붙일 기세다. 민주당 등 야당은 연일 거리홍보를 통한 여론전에 들어가 있다.
우리 소상공인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함께 심각한 굴곡을 겪게 돼 있다. 한국이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함께 96년 유통 개방을 하게 됐고, 그에 따라 국내 중소유통업체는 거의 궤멸에 이를 정도의 심각한 피해를 봤다.
2001년 11만685개였던 슈퍼가 2009년 7만9200개로 9년간 28%나 감소했다. 남아 있는 슈퍼는 예전과 달리 그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재래시장 매출은 99년 46조원에서 2007년에 27조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정부에 이런 피해 대책을 호소하면, 매번 세계무역기구 협정 위반이 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유통 개방 뒤 14년 만에 유통법과 상생법이 통과돼, 재벌들의 시장 잠식을 일부나마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어렵게 마련했다.
그런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그 장치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더욱더 생활이 어려워져도 이제는 정부로부터 실효적인 지원 및 보호를 받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에 그러한 지원을 요청해도 세계무역기구 가입 때와 똑같이 이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을 것이라는 소리를 계속 듣게 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런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곧 비준될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4월 미국보다 먼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30여개월이나 시간을 끌다가 지난 10월에서야 비준했다. 그사이 그들은 재협상에 나섰고 이익집단의 주장 및 반대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정부는 60%에 이르는 국민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찬성하고 있으므로 더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나머지 40%의 여론도 끝까지 수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네 탓이요”라는 여야의 공방 속에 소상공인들의 운명은 정처 없이 흘러가고 있다. 지난달 31일 여·야·정 사이에 합의한 소상공인 피해보전 대책들은 그나마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부터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책이다. 이 보전 대책에는 기존 ‘중소기업 창업 및 진흥기금’ 내에 별도로 소상공인 지원기금 계정을 만들어 정부가 출연하게 하고, 대형 유통시설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지정,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소상공인단체 법제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대책들이 이뤄진다고 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피해가 온전히 보전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려움에 빠진 소상공인들에게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줄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는 여야의 힘겨루기와는 별도로 당연히 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해 실시돼야 할 내용들이었으며 선거 때만 되면 여야 할 것 없이 당연히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것이라며 이구동성으로 말하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작금의 진통 속에 묻혀버리고 있다. 한나라당 쪽에서는 야당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합의안의 내용을 담보할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여야의 정략 속에 소상공인 업계의 운명도 또다시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상공인들에 대한 정치권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소상공인들은 한나라당과 야당에 호소한다. 한나라당은 끝내 게임에는 이길 수 있겠지만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여 관객들이 다른 경기장을 기웃거리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모든 책임은 집권 여당이 훨씬 크다 할 것이다. 민주당은 현재의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골격을 만들었던 정당이다. 현재 위급하게 주장하듯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우리 주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서민과 소상공인들의 이해만을 구하려 든다면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정정당당한 정책적인 호소와 의회 정신에 입각한 합리적인 정치를 하여야만 앞으로 수권정당의 모습을 기대하는 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시대의 요구와 소상공인들의 바람은 잘 돌지 않는 바람개비 탓만을 하는 정치권보다는 스스로 달려가며 바람을 일으키는 정치인의 출현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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